건강한 공적 논의의 장을 기대하며
이번 글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행위' 개념에 대하여 정리하며, 어떻게 우리가 정의롭게 살 수 있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교사로서 살아가는 저는 매년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뚜렷하게 느끼는 것은 치열한 경쟁과 일자리를 둘러싼 불안감이 아이들의 꿈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와 공동체를 위해서 꿈을 꾸고, 더 큰 존재와 연결하려는 영적인 갈망은 어느새 '먹고 살 수는 있냐?'는 차가운 질문 앞에 차가운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 듯 합니다.
전제주의의 폭력을 경험한 한나 아렌트는 왜 인간이 폭력에 허용했는지, 왜 사유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책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히이만'에 흐르는 '행위하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의 정치 이론가입니다. 한나 아레트는 독일 하노버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게 철학을 배웠으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칼 야스퍼스 믿에서도 공부를 하였는데, 이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랑에 대한 논문을 썼고, 이는 향후 그녀의 사상적인 주요 개념인 '세계 사랑 (Amor mundi)의 주요 근간이 됩니다.
1933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러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이 취소되어 프랑스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1941년 프랑스에서 독일 괴뢰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나치 수용소로 보내졌으나 탈출하여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고 교수 생활을 합니다.
주요 저작으로는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히이만> 등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 정치는 '아고라'라고 하는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고라(agora)는 '시장에 나오다' '물건을 사다'는 뜻의 '아고라조(Agorazo)'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그리스 주요 도시들의 아고라는 상거래를 통해 주민들의 일상이 펼쳐진 무대였습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공적, 사적 일에 관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만나는 도시의 공공장소로 발전했다. 고대 도시에서도 진정 도시답다고 불릴 만한 곳은 아고라의 열린 공간이었다." 1)
열린 공간에서 평등하게 만나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여론을 형성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가 바로 ‘아고라’였습니다.
아테네 남자들의 관심사는 ‘개인적인 삶’보다 ‘공동체적 삶’에 닿아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테네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를 통해서 그들의 사적 경제활동으로부터 자유로왔으며, 다함께 모여 이야기할 만큼 공동체는 작았습니다.
Economy(경제)라는 단어는 헬라어 ‘oikos’, 즉 ‘가정’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즉, 경제활동이라는 것은 ‘사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책임 하에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018년 경 미국 St.Louis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Westminster Christian Academy라는 학교의 학부모 대표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가정이었는데요.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의 경제관념에 대해서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경제활동은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정부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가벼운 세금 제도를 지지하게 하고, 교육에 있어서도 Public Education 보다는 Private Education을 선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쨓든, 아테네는 광장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운영되었고, 자신들의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작은 공동체가 상실되었습니다.
과거 로마제국 시대에 스토아 철학이 번성하였습니다. 스토아철학의 여러 내용 중에 '운명'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운명'이란, 인간은 우주의 일부이며, 우주가 운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일종의 '허무주의'적 개념입니다.
이러한 철학이 번성하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던 '자유인'이 거대 제국으로 강제로 편입되면서 공동체의 일과 개인의 일 사이에 거리가 멀어진 것이 주요한 이유입니다. 로마라는 제국에 편입된 아테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고, 로마 중앙정부의 결정을 따라야만 했던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삶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시대 이후로 세계 역사는 다양한 흐름 속에서 진행되어 왔지만, 개인은 '정치적 행위'와는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정치는 왕의 것이거나, 귀족의 것이었고, 현대 국가 체제에서 그것은 정치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근대 이후 개인의 문제였던 '경제'가 국가의 문제로 그 영역을 넓히게 됩니다.
공적인 장에서 논의 되던 '정치'는 소수의 사람들의 역할이 되어 버렸고, '경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경제가 공공의 영역을 차지하자, 정치의 문제가 공론의 장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유를 상실했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주장입니다.
"중세가 지나고 근대가 들어서면서부터 사적 영역에 해당되는 경제가 개인의 차원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며 국가적인 관심사가 됩니다. 일단 국가적인 관심사가 되면 공적 관심을 얻게 되지요. 따라서 경제의 성격이 변화됩니다. 본래는 사적인 것인데, 공적 영역에 들어와 공적 관심을 획득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경제의 본래적인 사적 성격이 공적인 것으로 질적 변화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가진 본래의 사적 특성이 공적 영역에 작용하면서 공적 영역에 많은 문제를 야기 합니다. 가장 큰 문제가 '정치의 실종'입니다."2)
한나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 사회는 서로의 다원성을 기반으로 한 공적인 영역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세와 근대로 오는 과정에서 점점 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공론의 장'이 점점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는 기술의 도움으로 과거 '직접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제도 중 대표적인 것인 '국민청원'이라고 생각하고, 이 외에도 인터넷 망을 활용한 다양한 제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도와 시스템이 아니라 '의식'입니다.
마련된 광장의 자리에서 어떠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경우 이야기는 주제는 '돈'입니다. 정치를 이야기할 때도 결국 목적은 '돈'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진정한 광장'을 잃어버린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야두바솀'이라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습니다.
'야두바솀'은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입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을 방문한 한 선생님이 꼭 가볼 것을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나치가 12년 동안 독일을 통치한 기간 동안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의 2/3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는 곤두박질 치게 됩니다. 이러한 암울한 독일사회의 분위기는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희생양을 찾고 있었고, 히틀러는 그 대상으로 '유대인'들을 지목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독일의 금융과 언론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이들로 인해서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으며, 전후 경제가 더욱 안좋아졌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반동 세력인 '유대인을 학살'하고 다시 전쟁을 일으켜 승리를 하면 패전국가로서의 부당한 전쟁 부담금으로부터 벗어나고, 위대한 게르만족의 중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전쟁은 극심한 후유증을 남깁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정신적 황폐화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한국사회도 한국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을 지금까지 겪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독일사회도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 중의 하나가 바로 '나치정권'의 탄생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의 처참한 경험 속에서 사유하였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구도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본성으로부터 이 문제를 되짚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왜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없는가?"
"왜 홀로코스트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
어제부터 서구 사회가 '반유대주의'적 감정을 가지게 됐을까를 찾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뿌리는 예수 승천이후 로마시대로부터 시작합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된 이후, 기독교 진영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키워왔습니다.
그 증오의 바탕은 어이없게도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 이유는 표면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AD 70년에 로마로 부터 멸망하여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약자로 전락했고, 사회적 소수가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든 소수를 향해서는 폭력이 행해지는 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였다는 표면적 이유와 소수라는 그들의 상황이 유럽 여러 곳에서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화교'가 드문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인천대 이정희 중국학술원 교수는 그의 책 <한반도 화교사>에서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화교들을 혐오해왔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뙤놈’, ‘짱깨’, ‘짱꼴라’라는 오랜 혐오의 언어는 화교에 대한 냉대의 증거물이다. 한국 정부는 일제강점기의 외국인토지법을 1961년 다시 공표해 1999년 폐지될 때까지 화교를 포함한 외국인은 상업용 토지는 50평, 거주용 토지는 200평 이상 소유할 수 없게 했다. 화교는 장사가 잘 돼도 규모를 키우기 어려워,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형 중식당에 속속 밀려났다. 이 교수는 “내가 만난 화교들은 세금은 똑같이 내지만 아동수당 같은 각종 복지제도 바깥에 놓여 있는 처지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홀로코스트는 끝이났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여전히 증오와 환멸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도 '옳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말이죠.
독일 나치도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옳다'는 명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가장 비참한 역사의 현장은 늘 '우리가 옳다'는 확신에 차 있을 때 발생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폭력적인 일탈, 전체주의의 회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2021년 코로나 상황 가운데서, 전 세계가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발생하며 군중은 '희생양'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시아 인종에 대한 '묻지마 테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jgfJ8zG9fg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배경에도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중이 가지고 있는 '분노'를 이용합니다. 특정한 그룹의 분노를 자신이 대변하는 것처럼 발언하고 행동하면서 정치적 힘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분노의 에너지는 반대 진영을 자극하고, 점점 더 격화되어 종국에는 두 개의 '짝패 진영'으로 형성되게 됩니다.
이러한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되면, 분노의 대상을 제거한다는 선동 하에 '전체주의'가 슬그머니 등장하게 됩니다. 전체주의는 독재와도 다른 것인데, 이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입니다. 분노한 군중은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사회 전체를 지배하려는 시도가 전체주의입니다.
"총제적 지배는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하고자 한다."
코로나 상황 가운데서 전체주의적 증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정 국가를 향한 분노, 특정 종교집단을 향한 분노, 특정 정치인을 향한 과도한 분노가 전체주의적 사전 증후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증후가 더 심각합니다. 폭력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극단적인 분노가 특정 개인을 향해서 쏟아지는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던 유투버가 하루 아침에 마냥사냥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연예인을 향한 도를 넘어서는 비난이 일상화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약자에 대해서는 관대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소위 사회적 강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것 처럼 잘못된 판단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번역한 포항공대의 이진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당시 근대 사회에 만연했던 ‘쓸모없는 존재’의 출현이었다… 전체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대중들은 정당이나 조합과 같은 확고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표류하는 모래처럼 사회를 떠다닌다.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의 대중이 생겨난 것이다. 지도자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대중에게서 전체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난다… 전체주의 정권은 개인을 쓸모없는 잉여존재로 만드는 정치적 도구와 장치를 발전시킨다. 자본주의는 잉여인간과 잉여자본을 발생시켰는데, 제국주의가 잉여자본의 조직이라면, 전체주의는 잉여인간의 조직이다."
1) 국민일보
2) 김선욱, <전체주의를 넘어 정치의 길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