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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Nov 09. 2021

갤럭시보다 아이폰이 더 현대적인 이유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라주(bricolage) 개념에 대하여

제가 브런치에 쓴 글 중에 7만 조회를 넘긴 글이 하나 있습니다.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의 의미'라는 글인데요. 이 글이 daum 알고리즘을 타면서 순식간에 7만 조회를 넘겨 제 글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본 이유에 대해 당연히 알고리즘을 타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또다시 왜 알고리즘을 탔냐고 묻는다면 가만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알고리즘을 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타당한 추론을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복고', '레트로'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복고 열풍이 뜨겁습니다.  미디어 콘테츠로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 인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는 듯합니다. 밀가루 브랜드 맥주가 나오는가 하면, 시멘트 브랜드 가방이 나오고, 배터리 브랜드 젤리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간판들이 복원되고, 옛날 방식의 인테리어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근대를 지나온 우리는 전혀 새로운 기술, 발전된 문화를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술, 예술, 아이디어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날마다 발전하고, 성장해야 올바른 삶을 사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새로움은 어느새 두려움, 부담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미래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영화들이 Distopia를 그리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나온 과거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행복해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며, 재 창조를 이루고 새문화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의 인류학자입니다.

그는 유대인계 프랑스인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난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살았으며, 구조주의 언어학에 영향을 받은 문화인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1)

그는 서구의 '사회진화론'적 입장에서 야만 사회와 문명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했습니다. 즉, 서구 사회는 합리적이며, 발전된 것이고, 야만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야만 사회도 나름대로의 발전 방식을 취한 것으로서 존중되어야 하며, 특별히 '차이'의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신화도 연구하였는데, 그의 인간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보편적 규칙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며, 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화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신화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해결된 것처럼 옮김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불안을 줄이려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신화는 불안 해소를 위한 도구이자,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짬뽕 맛집 애플 iPhone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패션인 터틀 렉 T-shirts를 입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당시 Hi-tech Industry의 관심은 핸드폰이라 불리는 피처폰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 세계적 열풍을 이끌던 핸드폰은 LG 전자의 초콜릿 폰이었습니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초콜릿 폰은 단숨에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였습니다.

LG 전자 '초콜릿 폰'

하지만 2021년 LG 전자는 휴대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였습니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LG의 영업을 정지시킨 장본인이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주머니나 가방에 3가지 물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는 휴대폰이었습니다. 전화를 걸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물론 그 안에 계산기도 들어있고, 일정도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리 쓸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계산기도 따로, 플래너도 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mp3 였습니다. 당시 mp3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회사는 지금은 생소한 '아이리버'라는 회사였습니다. '아이리버'는 mp3라는 음악화일 표준을 만든 회사로서 '워크맨'과 'cd 플레이어'를 완전히 대체하였습니다. 성인 손바닥 만하거나 이보다 더 큰 기존 휴대용 음향기기를 손가락 두 개 만한 크기로 대체해버린 것입니다.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세 번째는 랩탑 컴퓨터입니다. 2007년은 정보혁명의 중흥기로 모든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누구나 데스크 탑을 가지고 있었고, 직장인 중 랩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휴대폰, mp3, 랩탑


이 세 가지 무게만 해도 족히 3~4kg은 됐는데, 그 무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플의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손바닥 만한 휴대용 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무대에 올라 3개의 아이폰을 차례로 보여주었습니다.


Ipod(mp3 player), Phone, Internet

그는 이 세 가지 아이콘을 여러 차례 돌려가며 보여주고, 자신의 회사 apple이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디바이스에 담은 혁신을 이루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까지만 해도 기기를 조작하기 위해서 대부분 '버튼'이라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리모컨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아이폰과 비슷한 기능의 모바일 기기가 있기는 했지만, 수많은 버튼을 가지고 있거나, 스타일러스 펜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아이폰은 이 모든 버튼을 없애버리고, 스타일러스 펜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아이폰은 손가락을 사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QKMoT-6XSg

apple first iPhone launch

그 이후 모바일 시장은 급격하게 아이폰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뒤늦게 이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한 삼성은 현재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를 갖게 되었지만, 당시의 변화를 가볍게 생각한 LG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왜 LG는 아이폰의 혁신을 과소평가한 것일까요?

기술의 우위를 가지고 있던 LG 눈에는 아이폰이라는 기기가 그저 평범한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품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아이폰에 사용된 기술은 애플의 독자적인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기존 회사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을 활용하여 만든 것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애플은 기술개발 측면에서 놀라움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아닙니다. 그러면에서는 오히려 삼성이 더 뛰어납니다. 애플이 잘하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 해결해야 할 문제를 기존의 기술을 융합하여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브리콜라주(bricolage)

브리콜라주는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책 <야생의 사고>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원래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 또는 '수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가 현대인의 논리적 사고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묘사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원시사회의 문제 제작자인 브리콜뢰르(bricoleur)는 한정된 자료와 도구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변통에 능통한 사람이죠. 이와 정반대 되는 인물형은 현대의 엔지니어(engineer)입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기계에 대해 정확한 개념과 설계도를 가지고 시작하며, 또 철저하게 청사진을 이용하여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입니다."2)


원시 사회의 '브리콜뢰르'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기술을 활용하는 융합의 전문가입니다.


근대적 인재는 하나의 학문이나 기술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능력이 요청되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에서도 어떤 부분을, 자동차 기술에서 특정 분야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고액 연봉을 받으면 대우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유형이 인재가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인재를 대표하는 인물이 '스티브 잡스'입니다. 그는 공학도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인문학과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 낸 iPhone은 그러한 '인문학적 소양'의 결과물이었습니다.

iPhone 은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최적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무언가를 해결하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인간이 감성적 존재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촉감을 향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정의하고, 터치 방식의 인터페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어떠한 회사보다 아름다운 UI를 소유하고 있는 이유도 그들이 사람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브리콜라주 측면에서 바라보면 '스티브 잡스'는 현대적 인간이 아니라, 원시적 인간입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방식에 있어서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모아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브리콜뢰르입니다. 

또한 브리콜뢰르적 인간의 모습을 중심으로 기술적 통합을 이루어 낸 스티브 잡스는 Post-Modern 적입니다. Modern이 지속적인 기술발전에 치중하며 기술이 중심이 되는 발전을 이루어왔다면, 스티브 잡스는 아날로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중심으로 쓸모 있는 기술을 통합해 낸 현대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갤럭시는 spec 중심으로, 아이폰은 사용자 경험으로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익숙함으로부터 새로움을

2018년 2월 수원 미술전시관에서 브리콜라주를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재조합하여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된 여러 작품들이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옷을 이용하여 천막을 만들고, 헌책을 쌓아 담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선택받아 사용되고, 유행이 지나 낡아버린 옷들이 예술가의 손에서 다른 목적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제주도 한림에 가면 '탐나라 공화국'이라고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탐나라 공화국 정문

이곳은 남이섬을 지금의 문화콘텐츠로 만든 '강우현 대표'가 제주도의 초청으로 시작한 공간입니다.

탐나라 공화국의 슬로건은 "있는 대로 써먹고, 가진 걸로 살아간다"입니다.

실제로 이곳은 벼를 키워서 조경을 하고, 빗물을 받아 연못을 만들며, 깨진 유리병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것을 적합한 것으로 바꾸고,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용하여 새로움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내버리면 청소, 써버리면 창조! 헌책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지식과 상상"

강우현 대표는 앞으로 아날로그 책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헌책을 기부받고 있습니다.

헌책을 5권 기부하면 '탐나라 공화국' 여권을 발급하기도 합니다.

헌책 도서관을 만들어 낸 과정도 놀랍습니다. 폭파시키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돌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생각 같으면 그 돌을 없애려 노력했겠지만, 재창조의 전문가인 강우현 대표는 그 돌을 이용해서 독특한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레비나스의 브리콜라주의 개념은 예술과 건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발전보다 발견의 시대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빠릅니다. 엄청난 정보가 오고 가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발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이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요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지만, 저는 단 한 사람도 진짜 삶을 버리고 메타버스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현실이 괴롭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떤 삶입니까? 이것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소중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대단한 발전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레트로 열풍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다가올 미래의 AI, 로봇보다 좁은 골목길에서 구슬치기 하는 친구가 그립습니다. 경쟁과 발전보다 따뜻함과 공감이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기술의 발전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적 발전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발전이 필요합니다. 엔지니어의 이상을 성취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를 돌보는 '브리콜뢰르'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폰이 갤럭시보다 더 현대적입니다. 


1) 위키백과

2) https://risingeco.tistory.com/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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