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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Dec 28. 2021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판치는 이유

Netflix <Don't look up>을 보고 나서

음모론을 받아들일 것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한 10여년 전 '음모론'에 심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차'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기독교 음모론 관련 책을 통해서, 프리메이슨이니 세계 정부니 빌더버그 클럽이니 하는 집단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림자 정부>라는 책을 통해서 더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고, Youtube의 다양한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 스스로 음모론을 얼마나 확신하고 있었는지, 독립투사처럼 학생들에게까지 음모론 영상을 보여주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부끄럽고, 교사로서 당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행히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오랫동안 음모론을 공부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돌아섰을까요?

Youtube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영상의 내용은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며 비행운(contrail)을 만드는 영상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화면에 나타나 열변을 토하며 하늘에 나타나는 비행운이 사실은 유해화학물질(chemtrail)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은 어딘가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고 망상증 환자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하나의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저렇게 까지 완벽하게 장악을 하고 있다고? 정말 인간이 만든 조직이 저 정도의 장악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저는 음모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1) 악을 추구하는 일련의 조직이 어떠한 충돌도 없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일관되게 선할 수 있을까?
악의 속성은 '자기 중심성'으로서 결국에는 한 사람의 극대화된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충돌과 배신이 생기는 것이 역사적 교훈인데, 유독 음모론 조직만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여길 수 없었습니다. 조폭 영화를 보면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배신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조직은 공공선을 중심으로 상호 배려와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적인 욕심이 중심에 있는 조직이  건강하게 운영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2) 음모론은 세계 정부가 경제, 정치, 종교, 교육,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영역을 장악했다고 보며, 특정 인물들(정치인, 연예인, 경제인 등)이 세계 정부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이 현대판 '마녀 사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한 음모론에는 미국의 가수인 '비욘세와 Jay-Z'가 세계 정부의 하수인이라며, 그 증거로 호루스의 눈(연예인이 오른쪽 눈을 검지와 중지를 모아 만든 원 안에 넣는 행위)을 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음모론자들은 호루스의 눈을 하는 연예인을 모두 세계 정부의 하수인으로 보는데, 이러한 단편적인 행위나 발언으로 그토록 거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신분을 속여야 하는 이들이 드러내 놓고 신분을 노출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호루스의 눈을 한 연예인이라는 자료


3)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악이 사라진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역사는 선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견인되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음모론을 받아들일 경우 역사 전체를 악이 주관한다고 하는 거대한 전제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역사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악이라면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요? 모든 교육이 다 음모론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면, 모든 미디어가 다 거짓이라면? 어떤 것도 정상적인 것이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 정당할까요?


저는 이러한 이유(물론 더 많은 이유가 있지만)로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며, 신의 '신실성'을 믿는 신앙인으로서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음모론을 정리하고 나니,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거짓 뉴스가 판치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음모론과 같은 거짓 뉴스를 믿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 누구누구는 빨갱이예요!

놀랍게도 학교 현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특정 정치인을 "***는 빨갱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그 학생에게 그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빨갱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되묻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빨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며, 대부분 '복지 확대론자'이거나 '민족 평화론자'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빨갱이'라는 말은 partisan(파르티잔)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파르티잔'은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동시에 유격대 또는 게릴라와 같은 단체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 참고: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01344

일제 강점기에 '항일 무장 유격대'를 파르티잔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우리말 발음이 '파티잔'이었습니다.

항일 무장 유격대의 대원들 중 '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자들이 다수 있었는데, 파티잔이라는 말과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붉은색'이 합쳐져 파르티잔을 빨치산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사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빨갱이라는 말이 단순히 사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는 단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사회적 혐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1)  


빨갱이라는 단어는 특정 시대의 산물이며, 제 생각으로는 1993년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라진 단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은 한때 '빨갱이의 괴수'로 불렸습니다.

빨갱이 중에 빨갱이라고 여겨지던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을 때도 우리나라는 공산화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빨갱이의 실체는 사라지고, 말만 남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려움을 통해 선택하게 하라

그렇다면 빨갱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들리는 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선거시즌입니다. 빨갱이라는 말은 특정 후보를 겨냥하거나 그를 둘러싼 집단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그와 연관된 사람들과 일을 거부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을 통해 특정 선택을 유도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신천지'라는 이단을 다룬 '구해줘'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드라마 '구해줘'

2017년 8월 5일부터 총 16회로 방영한 드라마는 원작 웹툰 '세상 밖으로'를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저 변방의 이단 집단으로 여겨지던 신천지는 그 세를 크게 확장하여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신천지는 한 사람을 전략적, 기술적으로 포섭하여 한 인간을 몰락시키는 무서운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한 사람의 정신을 장악하고,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걸까요?


'두려움과 죄책감'입니다.


그들의 교리는 사람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줍니다. 성경의 권위를 왜곡되어 사용하고, 요한계시록을 마치 미래에 일어날 대재앙의 메시지인 것처럼 해석하여, 죄와 심판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특정한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세뇌합니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신천지가 주장하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서서히 빠져들게 되고,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집니다. 신천지도 두려움을 통해 특정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모론도 두려움을 다룹니다. 세계 정부에 의해서 모든 시스템이 점령되었으며, 그들은 이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주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몰아세웁니다.


홈쇼핑이라는 것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과거에 충동적으로 백만 원이 넘는 컴퓨터 한 대를 살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단어 때문이었는데요.

"이제 수량이 얼만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듭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황급히 카드를 찾아 번호를 입력하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빨리 무언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못하게 한 경우입니다.


두려움을 통해 실체를 외면하게 하라

Neflix 개봉 영화 <Don't look up 돈 룩업>은 현대 정치와 언론이 어떻게 대중을 기만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미시간 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케이트 디비아스키'는 어느 날 '혜성' 하나를 발견합니다. 크기가 5km~10km에 달하는 거대한 혜성으로 지구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죠. 이 정도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경우 지구는 멸망하게 되기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 내용이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케이트와 그녀의 지도교수의 민디 박사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지구가 처한 위험과 재빠른 조치가 필요함을 역설하는데요, 그 이야기를 들은 대통령과 참모들은 이 사실이 미칠 정치적 영향에만 몰두합니다. 케이트와 민디는 언론에 나가 이 사실을 알리지만, 시청률을 생각하는 미디어는 그저 가벼운 참담과 막연한 희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급박한 사실을 부적절한 톤과 매너로 전달하는 미디어의 행태를 참다못한 케이트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We're all gonna die!'를 외칩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케이트를 우울증이 있는 여자로 몰아세우며, 다소 미디어 친화적인 민디 박사를 대화의 상태로 정하게 됩니다. 민디 박사는 유명세를 타고, 권력자들과 놀아나며, 자신의 가족을 버리게 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인류의 위험을 자신의 재미와 바꿔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민디 박사는 자신의 잘못을 각성하고, 인류의 절망적인 상황을 대중에게 전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때 만들어 낸 하나의 구호가 'Just look up!'입니다.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사람들에게 '하늘을 보라'라고 외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고, 실체와 마주하라는 외침입니다.


반면 대통령과 참모들은 'Don't look up!'을 외칩니다.

"저들이 왜 하늘을 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이유를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두려워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올려다보라고 하면서 여러분을 깔고 보는 겁니다. 자신들이 우월하다 이거죠"


대통령과 참모 그리고 경제권력을 쥔 사람들은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을 이용하여 진실을 마주하지 못하게 합니다. 음모론과 이단 집단이 두려움을 이용하여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든다면, 이 영화의 권력자들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현실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비본질적인 뉴스가 여론을 주도한다

2022년 대선을 위한 싸움이 치열합니다. 2021년 12월 현재 가장 핫한 뉴스는 대통령 후보 가족사입니다.

모 후보의 부인은 다양한 허위경력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고, 또 다른 대선 후보는 아들의 도박 문제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편하고, 판단하기도 좋은 가십과도 같은 뉴스에 열을 올리며 논평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일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누구에게 해야 합니까?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과 절대 강자 미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인구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더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교육개혁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은 쉽게 해결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어땠느니, 아들이 어땠느니 하는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쉽죠.

중요하고 진중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차분하게 만듭니다. 들으면서 생각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딱하니 이게 맞다, 저게 맞다고 말할 수도 없기에 괴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있어야 더 나은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국민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국민의 뜻, 국민의 뜻'을 말하지만, 정작 그 국민은 바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뽑으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짜 뉴스와 가십이 판을 치는 정치현실에 대한 책임이 정치인과 미디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을 망각하는 국민이 있기에 가짜 뉴스와 가십이 판을 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말입니다.


빨갱이가 나라를 망치는 것도 아니고, 영웅이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국민이 진정으로 우리 공동체를 구할 수 있습니다.


Just look up!

하늘을 봐야 합니다.

사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토론하고 대화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절대로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하늘(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돈 룩업 영화 말미에 아름다운 종말을 맞는 사람들이 저녁 테이블에 둘러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도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겸손하게 신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의 은혜를 구하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라 여겨집니다.


1) 김득중의 《빨갱이의 탄생》 중에서 / 출처 : 제주의 소리(http://www.jejusori.ne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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