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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Jan 17. 2022

부모를 부모되게 하는 힘, 환대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

얼마 전 '환대'를 주제로 인문예술 통합교과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프랜시스 고야와 반 고흐의 그림 때문입니다. 

아래 두 그림은 모두 '초대'라는 주제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고야 <옷을 입은 마야>
반 고흐 <성경이 있는 정물>

고야의 그림이 '감각에 대한 초대'라면, 반 고흐의 그림은 '영혼의 초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흐의 그림 속 성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마음이 경건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두 그림이 가지고 있는 '초대'는 '환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을 보고 있는 이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존재합니다. 

선생님들과 '환대'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며칠 전 저의 8살짜리 막내아들이 저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와 우리 막내아들은 축구 경기 시청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자주 보는데요. 

그날은 제가 너무 피곤해서 아들에게 축구 경기를 틀어주고는 옆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잠시 잠이 들었는데, 아들이 제 어깨를 툭툭 치며 깨웠습니다. 


"아빠, 노트북 배터리가 별로 없었어" 


배터리를 확인해보니 10%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응, 아빠가 노트북 꺼지면 아이패드로 보여줄게"


저는 다시 잠들고, 아들은 제 몸을 소파 삼아 다시 축구 경기를 시청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다시 저를 깨웠습니다. 아들은 손가락으로 꺼진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일어나 아이패드를 켜서 축구를 틀어주고는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저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살짝 뽀뽀를 해주었는데... 뽀뽀가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 정말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내면의 소리가 볼을 통해 마음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함께 연수하는 선생님들께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애가 넷 이잖아요. 그중에 둘은 몸으로 낳고 나머지 둘은 마음으로 낳는데요. 몸으로 낳은 자식이나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막내들이 더 사랑스럽고 그래요. 예전에 저는 부모 자식 관계라는 게 낳았다는 사실 때문에 생기는 줄 알았어요. 근데 입양을 하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럼 부모 자식 관계라는 세상에서 가장 관계가 어떻게 생기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는데요. 오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답이 '환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솔직히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식보다 우리를 더 환대해주는 존재가 어디 있겠어요? 물론 애들이 크면 그 환대도 사라지지만, 우리 애들이 4살, 5살 이때는 제가 일하다 집에 들어가면 정말... 양팔을 벌리고 막 달려와서 나를 환대해주었거든요. 어린 자식이 양팔을 벌리고 막 달려올 때 그 얼굴 기억하세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그 표정과 눈빛... 그 모습에 '내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구나'라는 각성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결국 내가 부모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식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환대'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자식을 깊이 사랑하게 된 이유는 내가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식을 통해 경험하게 된 깊은 환대의 경험! 그것이 나를 자식을 깊이 사랑하는 부모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대의 본질은 "당신은 환대를 받을 만한 그런 존재예요", "당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라는 외침인 듯합니다. 신께서 우리를 존엄한 존재로 지으셨다는 그 사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환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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