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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Feb 06. 2022

#7. 텃밭일기

10번의 텃밭 관찰기 

2021년 9월 1일(수) 날씨 : 아직도 한 낮은 여름 같다.

오늘 오후 3시경 가을 텃밭 대명사인 배추와 무를 심었다. 그 곁에 함께 쪽파까지 옮겨 두었다. 밭이 넓지 않아 옹기종기 아이들 소꿉놀이하듯 심어 두었다. 읍내 종묘사에서 사 온 배추 모종은 가게 앞에 오랫동안 나와서 햇볕을 보았는지 바깥 잎들이 노랗다. 무 씨앗을 감사는  코팅된 화학약품처리 때문에 원래 무슨 색인지 궁금했다. 종자주권을 외치는 이때 종자채집을 겨울에 해 봐야겠다. 그럼 기다림이 필요하겠지. 한두 개는 끝까지 지켜봐 주어야겠다. 무꽃이 피고 질 때까지. 배춧잎을 벌레들에게 너무 많이 나눠주지 않기 위해 한랭사를 씌워두었다. 배추들이 답답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으나 그래도 온몸을 벌레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니 배추야 조금만 참으렴. 구월 첫날 가을 텃밭을 시작해 다행이다.      

2021년 9월 6일(월) 날씨 : 하늘이 높아진다. 

텃밭에 배추는 뿌리를 내렸는지 잎이 더 싱그러워졌고 무와 쪽파 싹이 새끼손가락보다 좀 더 크게 올라왔다. 비닐멀칭을 씌우지 않았더니 틀밭 고랑과 그 주변에 잡초가 무성해진다. 여름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속도와는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가을 잡초의 생명력도 질기구나. 퇴비용으로 심어둔 토끼풀은 정말 빠르게 자란다. 어릴 적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건 퇴비용 풀이라 그런지 클로버 모양새도 예전 그 아기자기한 모양이 아니다. 큼직큼직하다. 서양에서 온 걸까. 그렇게 잡 조가 나지만 뽑지는 않았다. 가을 날씨를 핑계로 여유를 둔 것이다. 몇 주 지나고 더 자라면 한꺼번에 예초기로 밀어버리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칭 생태텃밭인데 휘발유를 사용해 공기 중에 탄소를 발생시키는 게 조금 걸리긴 하다. 제대로 된 생태텃밭을 유지하려면 직접 풀을 베거나 뽑아줘야 하는데 마음만 태평하다. 그래서 태평농법이라는 말을 쓰나.     

2021년 9월 8일(수) 날씨 : 흐리다 가끔 비가 내림 

아침에 안쪽에 있는 배추를 보았더니 잎맥만 앙상하게 남고 본잎이 벌레에게 다 먹힌 게 한 포기가 보였다. 한랭사를 씌웠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다 먹어치웠을까 신기하다. 한랭사를 씌우기 전에 이미 그 속에 벌레들이 있었을까. 아니면 땅속에 있던 달팽이나 이름 모를 벌레들이 있었던 걸까. 한랭사를 씌운 게 무색해졌다. 그런데 유독 그 한 포기만 그런 게 이상했다. 사람들과 달리 벌레들은 자신들이 먹을 만큼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아서일까. 절제의 미덕을 갖춘 벌레인가 보다.      

2021년 9월 10일(금) 날씨 : 긴팔 옷을 입은 걸 후회했다. 

가을에 숨겨두고 며느리 몰래 먹을 만큼 맛이 좋다는 게 상추인지 아욱인지 갑자기 헷갈린다. 아무튼 봄에 너무 빨리 웃자라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상추를 다시 도전한다. 봄은 짧고 여름이 긴 요즘이다. 지구온난화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읍내 터미널 옆에 있는 00종 묘사에서 다섯 포기에 천 원 하는 담배상추, 청상추, 적상추를 사려다 뭔가 아쉬워 브로콜리, 배추 모종도 좀 더 샀다. 거의 만원 어치를 맞췄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종 충동구매를 했다. 화학비료 없이, 토양살충제 없이 심는다. 완숙퇴비를 미리 밑거름으로 뿌려두었어야 했는데 이 완숙퇴비는 소매상에서는 팔지 않는단다. 연초에 농협이나 마을에서 일괄신청받아서 할 때 그때 신청해야 한다. 종묘상 사장님이 무언가 성능이 좋은 밑거름용 비료를 추천해주는데 거절했다. 그렇게 상추를 스무 포기 정도 심었다. 볕 잘 드는 곳에 심어야 한다는 것과 병해충에 피해가 적어 초보 텃밭지기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해서 자신감을 얻었다. 

 2021년 9월 11일(토) 날씨 : 맑음

어제 심었던 상추 두 포기가 시들시들 그 잎을 땅에 흐느적거리며 펼치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어제의 생기를 푸른 잎에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물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지. 스프링클러로 물을 줄 때 그곳을 피해 갔을까. 여러 가지 추리를 했다. 결론은 토양살충제를 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 상추를 뽑아 땅을 약간 들쳐보니 굼벵이 같은 약간 통통한 애벌레가 상추 뿌리 바로 아래 동그랗게 똬리를 틀려 자리 잡고 있었다. 상추의 약한 뿌리를 이름 모를 통통한 그 애벌레가 야금야금 먹은 것이라 추측했다. 혹시 아닐 수도 있으니. 그러면 애벌레만 억울하니까. 오비이락이 될 수 있으니. 아까운 상추를 뽑아내니 자리를 맞춘 듯 이열 종대로 정렬한 상추의 오와 열이 이상해졌다. 어쩌면 이것도 강박관념이겠지. 조금 빈자리가 있으면 어때라고 생각하자. 애벌레를 보면서 생태계라는 게 오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또 다른 생명이 살아가게 하는 것. 그걸 막겠다고 그 작은 애벌레들이 사는 흙에 무지막지한 토양살충제를 뿌리는 것은 아니겠지. 식물들은 뿌리로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2021년 9월 13일(월) 날씨 : 오전에 비가 오다 오후에 그치다

봄 그리고 여름 가을까지 텃밭 가운데에서 센터 역할을 하는 호박은 여전히 잎과 꽃을 자랑한다. 울타리를 오늘 자세히 보니 수박만 한 열매가 하나 보였다. 벌이 있어 평소 가까이 가지 못해 못 봤는데 나름 꽃도 열심히 피고 이렇게 열매도 맺었다. 줄기만 늘리고 잎만 넓게 가진 텃밭의 욕심쟁이라고 생각했는데. 호박 하면 생각나는 게 어릴 적 맛있게 먹은 호박잎 쌈과 호박죽이 생각난다.      

2021년 9월 14일(화) 날씨 : 맑음 

배추와 브로콜리 잎들의 수난시대다. 진정한 농부는 새 한입, 벌레 한입, 사람 한입 이렇게 나눠줄 수 있는 넓은 배포가 있어야 한다는데. 앙상해지는 잎들을 보니 너무 안타까워 너튜브에서 천연살충제에 대해 검색해봤다. 세 가지의 천연살충제를 찾았다. 은행잎을 이용해 소주나 물에 숙성시킨 다음 물에 희석해서 식물들에게 주면 벌레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걸리도 자주 등장했다. 막걸리와 사카린을 섞어서 뿌려주면 이것 역시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알코올 성분이 잎들에게 몸살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그 외 돼지감자를 이용한 것도 있었다. 자신들이 사용했던 산 경험 들을 열심히 알려줬다. 그걸 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난 뿌리지 않았다. 그래 벌레들도 조금 먹어야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다 거의 다 먹으면 생각이 바뀌려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불행하다는 거라는데 다른 텃밭을 보면 웃거름을 해준 비료 맛을 보았는지 배춧잎 색깔이 진하다. 여기는 여전히 파스텔색인데. 생태텃밭이라는 게 열매 많이 맺고 병충해 입지 않는 완벽함. 즉 효율과 경제성을 앞 세우는 욕심을 버리는 마음 비우기에서 시작됨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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