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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Nov 14. 2024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작별하지 않는다/한강/문학동네/2021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는 책 속 작가의 말과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던 악동뮤지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노래를 듣고 이 책 이야기가 떠올라 택시 안에서 마냥 울었다는 이야기가 이제 이해가 된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이 부분이다. 처음 등장하는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문장으로 제주도 어느 해안가 나무들이 묘지로 묘사되는 부분이다. 


 작품은 <소년이 온다>와 시대는 거슬러 올라가지만 연결이 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가와 같은 직업인 작가 경하와 그의 친구 다큐멘터리 감독인 인선,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 정심과 그의 가족에 얽힌 제주 4.3 이야기다. 이야기는 1940년대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한다. 작품 속 자주 등장하는 촛불의 그림자 이야기와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이야기 전개과정을 이해하기 혼란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 역시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일 수 있다.  위 노랫말처럼 바다가 다 마를 때까지 역사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위로해 주고 함께 아픔을 나눌 때 진정되지 않을까 싶다.  아미와 아마라는 새, 오빠와 여동생, 인선과 경하 이야기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흘러 지나간다. 눈과 촛불의 어둔 그림자, 바다 그리고 돌이 된 연인이야기까지. 곳곳에서 이어지는 상징과 은유로 이어간다. 이를 상상하고 의미 짓는 과정 또한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첫 문장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시적이다. 이 문장은 <소년이 온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비가 올 것 같다"와 같이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다. 있었다는 과거 시제와 올 것 같다는 가정법의 차이 정도지만 맥을 같이한다. 소설 속에서 '눈'과 '비'를 작가는 어떤 상징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예상해 볼 수 있다.  마지막 문장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껶였다. 부러진 데를 다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이렇게 소설은 마무리된다. 시로 시작해서 시로 마무리되는 시적인 작품이다. 중간중간 모든 글들이 시처럼 서정적이다. 증언이나 발췌 부분을 제외하고는.  마지막 부분은 마치 이상 <날개> 소설처럼 암흑뿐인 세상 그래도 희망을 갖고 나아가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의지가 보이며 이 작품에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지 않을까 싶다. 너무 교훈적으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역사를 잊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말로 이어진다. 과거를 잊은 공동체는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작품에서 주인공 작가가 찾았던 발췌된 증언 중 한 할머니 인터뷰에서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이 소설은 <소년이 온다>처럼 역사 증언 문학이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중학생으로 도청을 사수하려 했던 그이 억울한 죽음을 누군가는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을 단호하고 냉철하게 꺼내 기억하고 잊지 않게 하려 한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묵묵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한림원 심사위원들에 말처럼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각의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말한다. 이 작품을 통해 제주4.3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휴가철 여행 장소로만 생각했던 제주도가 다시 보였다. 내가 가서 사진 찍었던 그 장소들이 어쩌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픔이 있던 곳, 한 가족들이 눈에서 보는 앞에서 이별을 해야 했던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안 5km 위 쪽으로 모두 한라산 중턱으론 모두 소개령을 내렸으니 말이다. 한강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처럼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아픈 과거 역사 소설은 너무 힘들다고했다. 작품을 볼 때 마다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이 한 몸이 되어 표현하는 것 처럼 느껴질때가 있었다. 다음에  '여수 순천 10.19 사건'도 소설로 쓸 거로 예상한다. 이 책 제목을 난 자주 "작별하지 않겠다"로 이야기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인데 주인공 친구 인선의 프로젝트명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게 더 단호하고 간절한 문장 같다.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전쟁으로 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는 일이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이며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역사적 트라우마로 이별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 역사적 상처로 인해 생긴 그 마음이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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