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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산책방

입장을 바꿔보면 다시 보인다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김원아 글, 이주희 그림, 창비, 201

by 한산

"인간들을 조심해야 해.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만 남아. 인간들은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나 봐. 중요한 건 그저 자신들의 호기심뿐인 것 같아."(8. 손이 지나간 자리, 57쪽)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나는 나비> 이런 드라마와 노래가 더 와닿는 이유는 뭘까? 나와 직접 연관된다는 친근감 때문일까. 먼 이야기,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 가까운 누군가에게 아니 나에게도 있을 법한 일들이라는 생각일까. '나는'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이 책의 작가도 이 책을 쓴 이유가 아이들이 곤충이나 벌레, 자연 속 식물들이 인간중심으로 대하는 장난감이나 실험물이 아닌 오롯이 배추흰나비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작은 생명체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며 이 동화를 썼다고 한다.


곤충 잠자리 이야기처럼 작가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시절 유난히 가을이 되면 잠자리들이 많았다. 지금은 덜한 이유는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탓일까. 아니 그 당시에는 이런 친환경 농법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등교시간 가을이라 이슬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등굣길 가로수와 콩잎 같은 풀잎에 많은 잠자리들이 고정한 채로 있었다. 그러면 등교하는 아이들은 그냥 줍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훈장처럼 윗옷 가슴팍이나 팔뚝 부근에 부착을 했다. 누가 누가 많이 잡았는지 내기를 하듯 그렇게 많은 잠자리들이 교실에 모인다. 그러면 오후가 될 무렵 이슬은 마르고 잠자리들은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날이 따뜻해지면 창가로 날아가거나 천장에 올라간 그들로 교실이 온통 잠자리판이 된다. 이때 그냥 그렇게 풀어주면 좋은데 꼭 더 나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잠자리 몸 일부를 해치는, 날개를 자르는 것은 약과일까. 그 어린 시절 인간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얼마 전 3학년 과학시간에도 배추흰나비 기르기를 했다. 자연에서 가져온 배추흰나비알과 애벌레가 아닌 과학물품을 파는 사이트에서 구입해서 왔다. 친절하게도 케일잎과 알이 보관된 통 속에 정성껏 담겨서 왔다. 학생들은 패들렛(공유 사이트)을 이용해 관찰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사진도 찍어서 올렸다. 동물의 한살이 일정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번데기 모습을 찍어서 올리는 모습, 날개돋이 장면을 직접 보았다는 아이는 탄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날개가 잘 펴지지 않아 안타까워도 하고, 결국 성충인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잘 자라라는 편지까지 잊지 않고 썼다고 한다. 단 아이들이 이 작은 생명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살이 일정 다 끝났는데 다시 텃밭에서 케일 잎 뒷면에 있는 애벌레가 보이자 다시 반복했던 걸 반성한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들은 방충망처럼 생긴 좁은 곳이 아닌 넓은 텃밭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이 동화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이다. 교사로서 학생들과 과학시간 배추흰나비 기르기 활동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동화다. 애벌레를 의인화하여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쓴 책이다. 애벌레가 너무 많아 숫자로 표현된 이름이라 아쉽긴 하다. '3학년 2반 7번 애벌레'라는 표현이 군대 유격훈련장 군인 같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나이를 표현하는 '7학년 9반입니다'라는 표현도 떠올랐다. 표지 개성 있고 귀여운 애벌레 그림처럼 각각의 개성을 담은 이름이 있었으면 어쩔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기에는 애벌레들이 알에서 너무 많이 나왔을까.



한 번만이라도 애벌레 입장에서 생각하길 바라는 선생님 말씀과 달리 아이들은 애벌레를 놀이기구나 장난감처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벌레들 스스로 유해한 침입자를 물리치는 방법을 찾는 것에서 방충망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자주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 인간도 어떤 거대한 외계인에게는 작은 애벌레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또한 초등과학 동물의 한살이 배추흰나비를 길러보려는, 또 그 과정을 담은 동화책 중 온책 읽기를 추천받고 싶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3학년 00반 00알, 애벌레, 어른벌레, 번데기 모습이 달리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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