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한강/문학과 지성사
2024년 12월은 희비 격차가 심했다. 계엄령과 노벨문학상으로. 그렇게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산(조금 과한가)으로 필명을 할 만큼 한강 작가 작품과 친해졌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 <흰> 이후 네 번째 책이다. <채식주의자>는 억지로 쪽수 끝을 보았을 뿐 무슨 이야기인지 헷갈려 다시 읽어야 한다. 인물, 사건, 배경 소설 구성의 삼요소 중 하나인 인물에 대한 몸짓, 손짓, 표정, 대사가 그 인물을 얼마나 잘 묘사하는지, 섬세한 관찰과 치열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소설에서 중요한다는 걸 알았다. 작가의 첫 소설이라 조금은 안일한 생각과 노벨평화살을 받은 작품 최근 작품과는 조금 서툰면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의 사랑>이라는 제목에서 인물의 개인사라고 해야 하나. 단순한 멜로나 로맨스로만 생각했던 것을 크게 반성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최근 작품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전개방식을 펼쳤다. 상처받은 두 인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하나의 주체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처럼,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나는 것, 그 몸인 분신처럼 자흔과 정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단 역사적 배경, 시대적 배경이 조금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골목길 묘사와 직장생활, 자취생활 모습으로 정확한 시대상황을 가늠할 수 없었다. 1980년대로 짐작해 본다. <소년이 온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 4.3 사건, <여수의 사랑>은 어쩌면 10.19. 여수항쟁을 다룬 이야기지 않을까 짐작은 해 보았지만 아니었다. 주인공이 여수에서 오는 통일호 기차에서 태어난 '자흔'이를 보고 상상해 보는 건 너무 억지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여수항쟁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연결을 해 본다.
처음 판 해설을 했던 김병익은 위 작품을 두고 "전혀 신세대적이지 않고, 그의 아버지 세대가 지금의 그의 나이로 살았을 1960년대, 혹은 그 이전의 시대에 속해 있을, 어둡고 간난스럽고 한스러운 세계이며 유행적인 것을 도모하지 않은 채, 전통의 세계와 정통의 양식 속에서 그의 정서와 문학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고 말하며, 적어도 겉보기로는 풍요하고 밝고 미래는 한없이 열려 있는 듯한 이 1990년대 중반에 이 시절의 풍속에 어울려야 할 나이의 젊은 작가가 왜 그처럼 지쳐 있는지 이 가볍고 환한 세상에서 누가, 발랄해야 할 이십 대의 그를 사랑도, 화해도 거부하게, 아니 그곳에 다다르기 조차를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묻는다.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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