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그냥 분유 먹여!

모유수유에 얽힌 이야기 1

아기를 낳으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나 할 일이 많을 줄이야. 처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다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먹이고, 싸면 기저귀 갈고, 재우고... 어디 이것뿐이랴. 작게 나눠 생각하면 할 일이 수두룩하게 많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아기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줘야 한다. 그중 한 가지가 모유수유!


배고프다고 할 때마다 젖을 물리면 자동으로 먹여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기는 잘 못 빨고 허구한 날 젖은 땅땅하게 굳어 아팠다. 허연 게 덮여 바늘로 따기도 몇 번. 육아서만큼 매달렸던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아이가 젖을 먹고도 조금 뒤에 울기 시작하면 괜스레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모유수유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땐 뭐든지 서툴렀을 때여서 안는 자세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환경이 바뀐 탓에 적응이 안 된 걸 수도 있고, 아기라서 말을 못 하니 관심을 끌어보려고 그냥 운 것일 수도 있는데 왜 그때는 울기만 하면 젖 탓을 해 댔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애기띠로 아기를 매고 외출을 했던 날의 일이다.

그다지 멀리 나가지도 않았는데 집에 오는 길에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도란도란 남편과 이야기하며 나란히 걸어왔건만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젖!'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며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옆을 보니 어라? 남편이 없다. 깜짝 놀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저만치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애기띠로 매고 있던 아기는 이제 발버둥을 치며(아니 아직 손발이 잘 움직이던 때가 아니라 내 눈이 제 멋대로 상상한 것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목청껏 울어 재낀다. 내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치뜬 눈을 남편에게 향하고 빨리 걸으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슈퍼에서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게 보여 그게 무거워서 못 걷나 싶어 재빨리 잡아챘다. 그런데도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걸어가는 꼴이란... 뒤통수를 한대 세차게 후려갈기고 싶었다. 집은 아직도 보이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는데 대체 왜 저렇게 느긋할 수 있는 것인가. 애가 이렇게 우는데 이 눔 남편은 걱정도 안 되는 건가? 아니면 아직 부성이 생기지 않은 그에게 아기의 울음은 한낯 소음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되려 나에게 집에 가고 있는데 서두른다고 짜증을 냈다. 그렇다고 애기띠를 대신 맨다고 해도 내놓지도 않고 대체 뭐 하자는 건지.


겨우 울고불고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를 받고 뛰어 올라가서는 땀에 절은 옷을 들추고 수유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도 어찌나 울어댔는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돼서 안 그래도 속상한 맘을 더 무겁게 했다. 잠시 젖을 물던 아이는 조금 뒤에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남편의 한마디 "그냥 분유 먹여."


하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맘 속 깊은 곳에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오기가 치솟았다. 모유수유만 해서도 잘 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 지금 생각하니 참. 나도 고집불통이다. 갓난쟁이를 키우는데 뭐든 잘 먹이고 하면 될 것이지 뭔 모유수유. 모유수유 노래를 부르고 집착을 했는지.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모유수유가 좋다는 '~카더라'에 빠져서 우리 아이는 꼭 모유수유를 하리라 생각했었다. 뭐든 그런 것 같다. 하나에 집중하게 되면 점점 파고들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집착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김밥을 싸기 위해 재료를 산다고 생각해보자. 단무지를 고르면서 유기농 무와 조미료를 적게 넣은 것을 찾다가 점점 단무지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가 김밥과는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단무지를 산다면 그건 김밥에 적합할까 그렇지 않을까? 이상한 예인가?


어쨌든 나는 남편의 한마디에 욱! 했던 그날 이후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포대기로 아이를 업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이다. 그러자 아이는 더 잘 잤고 내 두 손은 자유로워졌으며 부엌에서 요리도 가능해졌다. 덕분에 삼시 새끼도 잘 챙겨 먹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이불과 쿠션을 벽에 기대어 마련한 수유용 공간에서 아이와 씨름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씻지도 못했었다. 물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했고 말이다. 잘 먹으니 신기하게 머릿속의 여유도 생기는지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은 배고픔에서 온 것인가? 어쩌면 허기짐에서 오는 짜증을 내가 가장 서툴렀던 육아에 쏟아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의', '식', '주'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거겠지. 고집이 한풀 꺾이니 가끔 남편에게 분유를 타서 먹이는 걸 시키기도 하고 잠시나마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렇게 편한 것을.


이 거구만. 모유고 분유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뭘 먹어도 잘 큰다. 나와 아이 모두가 편안해야 육아도 즐길 수 있는 거였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알아서 잘 흘러간다. 조금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필요한데 나의 경우 멈추지 않고 아이에게 젖을 주는 것이 되려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를 먼저 돌보라는 것! 내 아이니까 완벽하게 키우고 싶다고 나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왜냐고? 난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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