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우는 게 일"
이라고 어른들이 자주 말씀하시곤 한다. 그래. 말을 못 하니 울음으로 모든 걸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나에겐 다 똑같이 들리는 것이 문제다. 나의 주된 정보원인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아이의 울음소리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글이 보이곤 한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아무리 들어도 그 소리가 그 소리 같던데!?'
첫째가 4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를 낳기 직전에 오셔서 3개월간 아이도 봐주시고 산후조리도 도와주시던 친정엄마가 가시고 얼마 안 되어 혼자 아이를 보는 게 익숙지 않았던 때였다. 초보 엄마라 재우는 것도 서툴러서 그런지 아이가 예민한 건지 잠을 푹 자지 못했었다. 그런데 꼭 자정 전후로 시끄럽게 빽빽 울어댔다. 배가 고프다는 건지 어디가 불편한 건지 기저귀를 갈아줘도, 젖을 물려도 나아지질 않았다. 목소리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울어댔다.
그즈음 남편이 나를 위한 도시락을 사들고 회사에서 돌아오곤 했다.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씻은 다음 나에게서 아이를 받아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운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나를 위해 사온 영양가 가득한 도시락을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는 내가 생각한 환상이다. 우는 아이를 안거나 업고 달래 가며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거나 잠시 어딘가에 놔두고 나중을 기약하는 게 현실이다. 남편은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한 나에 대한 위로를 고생했다는 표정과 말로 때우고는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푼다. 그리고는 자신의 오락을 위한 무언가를 하며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다시 아이가 자지 않고 울어대기 시작하면 좁은 공간을 빙빙 돌며 아이를 달래는 나를 뒤로 하고 주섬주섬 뭔가 준비를 한다. "뛰고 올게." "?!"
나가서 달리고 온단다. 풉. 애가 뭐가 불편해서인지 모르지만 잠을 안 자고 울고 있는데 진땀 빼며 달래는 아내를 보면서 나가서 달리고 싶은 생각이 어떻게 드는 거지? 팍!!!! 하는 소리가 몸속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다. 열불 터지는 소리인가?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어서. 그래 너도 아이 키우는 건 처음이지. 아마 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분일 거야. 뱃속에서 키워보기를 했나, 배 아파 낳아보기를 했나. '부성' 은 언제 생기는 거더라. 웃음이 나면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짜증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황당해서 열 내기도 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다. '가라 가.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도 없는데 혼자 조용히(?) 달래고 할 거 하는 게 낫지 뭐.' "잘 다녀오셈!"
잠시 서 있던 남편은 내 대답이 신호탄 인양 러닝화를 발에 끼우고 현관문을 나섰다. 시끄러운 소리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은 건지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것이 보였다. 잘 달리고 오시라지. 나도 애만 키우고 나면 다 할 거라 이거다. 아이를 달래며 몇 번을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둘째와 둥이가 찾아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그 뒤로도 한동안 남편은 집에 있을 때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곧잘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그때도 '주짓수'라는 운동을 했었는데 달리기는 왜 했던 거지? 운동을 핑계로 육아로부터 도망을 간 거였나? 덕분에 나는 우는 아이 달래서 재우는데 '도사'가 됐다. 일단 안고 걸어본다. 걸을 때의 몸의 흔들림이 전해져서 기분이 좋아지도록 천천히 리듬감 있게 걷는다. 이때 노래를 부르면 리드미컬하게 걷는데 도움이 된다. 주로 "둥게~ 둥게~ 둥~게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노랫말을 대신해서 했던 기억이 난다. 잠을 잘 시간이라는 둥, 잘 자야 내일도 즐겁게 놀고 쑥쑥 큰다는 둥. 동시에 아이의 몸을 토닥여주는데 뱃속에 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주면 잘 잘까 싶어서 내 심장이 뛰는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했었다. 한동안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잠들었다. 예민하던 등 센서도 점점 반응이 늦어지기 시작해서 내려놓으면 혼자서도 조금씩 자 주었다. 정말로 '도사'가 되었다고 느꼈던 건 누워서도 수유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아예 잠잘 시간이 돼서 졸려하는 것 같으면 아이를 젖에 붙이고 같이 누워버렸다. 그렇게 되니 남편이 좀 도와주지는 않을까 눈치 보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편했다. 있어도 내 맘대로 없어도 내 맘대로!
지금 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대단히 미안해하면서 자기가 미쳤었다며 왜 그랬지?라고 반문한다.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어이가 없다. '네가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