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애 안 잡거든요?!

이곳은(일본) 아기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나면 한 달 검진을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해 주고 그다음 3개월, 6개월, 1년, 1년 반 이런 식으로 텀을 두고 근처 소아과에서 검진을 하게 된다.


3개월 검진을 앞두고 소아과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던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인터넷으로 병원을 찾아 헤맸다. 엄마와 아기에게 친절할 것. 성심성의껏 봐줄 것. 가까울 것 등을 기대하며. 운이 좋았는지 평이 엄청나게 좋은 소아과가 집에서 가까운 역 앞에 있었다. 당장 예약을 했는데 인기가 많아서인지 며칠을 기다리게 되었다. '얼마나 좋은 소아과면 이렇게 사람이 몰릴까' 하는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었던 것 같다.


드디어 소아과에 가는 날.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기띠로 아기 안기.

늘 두 손으로 받치고 안기만 했지 아기띠로 안는 건 아이가 흐물거리는 탓에 무서워서 잘하지 않았었다. 어설픈 손동작으로 겨우겨우 아기띠 안에 아이를 넣는데 5월이라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땀이 줄줄 흘렀다. 뒤로 맨 백팩은 잔뜩 든 짐으로 무거워서 자꾸 몸을 뒤로 잡아 내리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 아기가 있어도 기저귀와 물티슈만 들고나가지만 그때는 뭐 하나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아이의 손수건부터 갈아입을 옷에 기저귀도 몇 장씩 넣어서 외출할 땐 짐이 한 보따리였다.


겨우겨우 병원에 도착한 나는 한동안 아이를 안고 기다렸다. 인기 있는 병원이라더니 역시나 달랐다. 늘어진 대기 줄... 주사도 맞고, 뭔가 약도 먹어야 하는데 수유를 하면 약을 먹지 않을 수 있어서 병원 가기 30분 전까지만 수유하고 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당시 모유수유로 고생을 하던 터라 내내 아이를 젖에 붙이고 있던 때여서 걱정이 산더미 같았다. 아니 그런데 다른 엄마와 아기들은 어쩜 저리도 우아하고 조용하던지. 우는 아이도 없을뿐더러 엄마들은 곱게 화장까지 하고 있던 게 인상적이었다. 땀에 절어 헉헉 대는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키도 재고 몸무게도 재고 예방접종이며 약 복용까지 모두 마쳤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선생님과의 면담 시간이 남아있었다. 드디어 순서가 되고 나를 보신 선생님은 다짜고짜 "엄마, 엄마는 지금 모유만 먹이시죠? 모유가 부족해도 계속 고집을 부릴 건가요?" 이러시는 게 아닌가? 건강검진 시에 내야 되는 질문지에 체크한 것을 보고 말씀하시는지 안 그래도 첫 육아라 자신 없어 죽겠는데 인기 있는 소아과 선생님이 하시는 소리라니... 잔뜩 주눅이 들어서 필요하면 분유도 먹일 수 있어요 라고 했지만 들으셨는지 마셨는지 "엄마, 아이가 잘 웃고 잘 논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시죠? 이러다가 갑자기 말도 못 하고 먹지도 못하고 응급실 가야 될 수가 있어요." 이러면서 무어라 무어라 혼을 내셨다. '응급실'이라는 소리에 속으로 깜짝 놀란 탓인지 그 뒷 이야기는 잘 들리지가 않았다. '내가 무슨 육아 베테랑인가? 해 본 적 없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엄마가 설마 애를 잡을까?!' 표정이 굳는 것 같아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설교와도 같은 꾸중 끝에 분유에 대한 안내를 받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집에 가는데 눈물이 자꾸 나와서 펑펑 울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중얼대면서. 얼마나 웃겼을까. 아기띠로 애를 안고 엉엉 울면서 중얼중얼 대는 다 큰 어른. 하지만 그때 난 정말 심각했다. 고집부리던걸 딱 걸린 것 같아서 부끄럽고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처음 본 자리에서 꾸지람을 했던 선생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내가 다신 그 소아과에 가나 봐라.'


6개월 검진을 앞두고 시댁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시엄마에게 지난 검진 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유명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소아과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찾아간 곳은 동네에서 오래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다니던 병원에서 이사를 간다니까 아이의 상태에 대한 소견서를 새로운 소아과 선생님께 드리라며 나에게 주었는데 그걸 전해드렸더니 대충 보고 버리셨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항상 목구멍 깊숙한 곳에 뭐가 걸려 있는 기분이었는데 쑤욱! 하고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괜찮아요. 엄마가 너무 힘들었나 보네. 이제는 시어머니께 맘 껏 기대기도 하고 좀 천천히 해요." 이러시는데 괜히 목이 막혀 대답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맘 편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위로를 받은 덕분인지 그 이후로 나는 쿨~ 한 엄마로 조금씩 바뀌었다. 뭐가 좀 안돼도 '그럴 수 있지'라고 하면서 내 탓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전에는 아이가 안쓰럽게 보여 속상하던 것이 귀엽고 이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보다 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건 참 고되고 외로운 일인 것 같다. 아이의 먹을 것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고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함께 감정을 공유할 수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육체적인 힘듦이야 눈에 보이고 손목이 아프면 파스를 붙인다거나 하는 식의 해결이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것은 눈에도 안 보이고 스스로도 잘 못 느끼니 (아니 인정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다.) 나아지기가 쉽지가 않다. 사실 누군가가 옆에서 '많이 힘들지? 잘하고 있어. 조금만 힘 내. 괜찮아.' 이런 말 한마디만 해주면 '힘 좀 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도 열심히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는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날리고 싶다.

"많이 힘들죠? 다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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