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첫째의 목이 서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다. 늘 아이를 안고 있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는 '포대기'라는 신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오매불망 오기만을 기다리며 '내가 포대기 오기만 해 봐라 뭐든지 한다'라는 심산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띵똥~'
낯익은 EMS 상자를 들고 있는 우체국 아저씨가 어찌나 반갑던지. 마음속으로 포대기를 외치며 상자를 열었다. 쨔안~ 드디어 실물 영접! 아... 그런데 상상과 또 달랐다. 여름용이라며 짤막한 길이를 한 포대기였는데 망사로 된 삼각형의 주머니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달려 있는 끈은 왜 이렇게 길던지. 게다가 어깨끈까지 달려 있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뒤지고 시뮬레이션했건만. 막상 하려니 되는 게 없었다.
커다란 문제는 목이 서지 않은 아기를 업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목이 조금만 꺾여도 큰일이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내게 어부바는 세상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높은 곳에 포대기를 올려놓고 삼각형의 주머니에 아기를 맞춰 눕힌 뒤에 짐을 짊어지듯 등에 붙이고 들어 올려도 보고, 한쪽 팔에 아이를 눕히고 천천히 팔만 들어 올려서 등에 최대한 올려붙인 다음 아이를 굴리듯 업는 방법도 써 봤다. 어려웠다. 어부바를 할 생각을 하면 아이를 들어 올릴 생각에 한숨이 먼저 나왔다.
남편이 집에 있던 어느 주말.
혼자서 낑낑대다가 남편을 불렀다. "어부바 좀 하게 애 좀 안아서 등에 올려줘." 그런데 남편에게서 돌아온 말은 "어차피 혼자 할 거잖아. 그러니까 혼자서 해."라는 것이었다. 잘 안 되는 걸 하느라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나 있던 탓인지 남편 말이 외국어(남편은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인)라 이해를 잘 못한 건지 내 귀에 "... 혼자 하셈~" 이런 식으로 들렸다. 이럴 때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라는 말을 쓰면 되던가.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서 입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마치 판타지 소설 속 드래건처럼. "크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현실은 불은커녕 뜨거운 한숨만 나왔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가 꺼져있는 텔레비전에 눈이 갔다. 어설프게 아이를 안고 주저앉아있는 사람. 삐죽빼죽한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대다가 이거다 싶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고 했다. 우리 집엔 거울이라곤 세면대에 붙어 있는 것 밖엔 없어서 아이를 업을 때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했었는데 텔레비전이 있었다. 새카만 화면이라 표정까지 세세한 건 볼 수 없지만 실루엣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를 한쪽 팔에 눕히듯 안고 팔을 살짝 틀면서 등에 대고 살짝 굴리기! 좋아! 보면서 하니까 어딜 잡고 받쳐야 하는지 알 수 있어서 편했다. 다음은 포대기를 들어서 뒷목보다 살짝 윗 쪽으로 끌어올린 다음 끈이 달린 부분을 꼭 잡고 앞으로 단단히 끌어당겨서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한쪽씩 랩으로 싸듯이 힘줘서 보낸다. 이때 포대기 끝부분에 달려 있는 긴 끈을 양쪽 손으로 하나씩 잡아서 재빨리 엉덩이 밑을 받치듯 교차시킨 뒤에 다시 가슴 쪽으로 보내서 묶어낸다. 성공!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환호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속에서 나던 불도 남편의 한마디로 꽁 하던 마음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부바는 빠르게 익숙해졌다. 이제는 전용으로 나온 '포대기'가 아니라도 문제없었다. 커다란 수건이나 목도리 혹은 손만 받치고도 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조금씩 늘어나서 집안일도 하고 머리도 감고!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난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멋대로 움직거릴 수 있는 두 손 두 발 만세!!!
혼자서도 잘해 낸 내가 대견했다. 그렇지만 방식을 바꿨을 뿐이지 계속 나 혼자 육아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부바 문화를 접한 적이 없어서 남편에게는 저게 뭔가 싶었을 수도 있다. 내가 하도 아이를 잘 얼르고 달래니 혼자서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때 생각했다. 지속적으로 '육아는 함께 한다'는 것을 어필하면서 조금씩 나눠서 해야겠다고. 아주 간단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기저귀 갈기나 분유를 위한 물 끓이기, 나의 영양공급을 위한 맛있는 먹을 것 사 오기 등을 시키면서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해야 하는 것들의 어려움을 느끼게 해주다 보면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무려 셋째 넷째 둥이가 태어나고 결실을 맺었다.
새벽에 수유한다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 우는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으면 자다가도 달려와서 도와준다. 오밤중에 아이가 울던 말던 코까지 골며 자던 남편이 말이다!
이제는 어부 바고 뭐고 도와달라고 하면 아무 말 않고 당연하다는 듯 도와준다. 얏호! 이게 '함께' 하는 육아지. 포기하지 않고 그러나 변화를 꾀하다 보면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날은 꼭!! 올 것이다. 꼭!!!!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