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주는 것들 1.
몸이 힘들거나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이 힘든 날은 무언가에 위로를 받고 싶어 진다. '무언가'는 많을수록 좋다. 질리지 않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는 '커피'이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코끝을 간질이는 뜨거운 수증기에 섞인 쌉쌀하지만 고소한 향.
호호 불어 한입 마시면 혓바닥에 느껴지는 쓴맛과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서 입안에 남는 개운함.
기억을 더듬는데 뜨거운 커피만 떠오른다. 예전에.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기 전에는 뜨거운 커피를 좋아했구나... 그것도 원두커피로 말이다.
커피라는 것을 처음 마시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너 커피 마실 줄 알아?" 라면서 내 온 것이 믹스 커피였다. 어린 마음에 마셔 본 적 없다고 말하면 왠지 친구에게 지는 것만 같아서 "나도 마셔봤어." 이러면서 받아 마셨다. '까짓것. 그냥 마시면 되지.'라는 생각에 들이킨 첫 모금은 여러 가지 맛 중에 '쓴 맛'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마셔봤다고 해 놓고 얼굴을 찡그릴 수는 없어서 "음~" 뭐 이러면서 음미하는 흉내를 내며 겨우 삼켰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친구가 자리를 뜬 사이에 얼른 싱크대에 흘려버리며 '다신 내가 이런 거 마시나 봐라'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커피를 마신 건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잠이 올 때, 입이 심심할 때, 친구들과 모여 수다 떨 때 버릇처럼 커피를 마셨다. 일을 시작하고는 바쁜 아침 출근길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집에서 일찍 나가기까지 했다. 커피 마시는 횟수는 늘어나고 컵은 점점 커졌다. 이쯤 되면 중독인가?
그런데 둥이를 가지고부터는 몸이 카페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진하게 하루 한잔 마시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식은땀이 났다. 그전까지는 내 몸상태와 마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뭐든 오케이였다. 커피 한잔의 우아한(?) 시간이 잘 나지 않아서 하루 종일 틈틈이 홀짝대며 마시느라 식어버린 커피도 잘 마시고, 인스턴트면 어떠리 스트레스 날려 줄 것 같은 달달한 믹스커피도 좋았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지 아이스커피를 자주 마셨다. 하지만 살짝 연하게 내린 커피 한잔이 하루에 마실 수 있는 한계치였다. 커피와 맛이 비슷하다는 민들레차도 마셔보고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은 허브차도 마셔보고 했는데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커피에 우유를 섞어 마셔보기 시작했다. '올레? 괜찮네?' 그때부터 나는 우유를 섞은 커피를 하루에 한잔만 마시기로 했다.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이 있지만, 편의점에서도 쉽게 내릴 수 있고 후루룩! 마실 수 있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선호한다.
아이들과 집안일, 내가 벌린 일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땐 카페라테를 떠올린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얼음 섞인 그것. '아으!! 좋은 것!' 중요한 것은 마시는 타이밍이다. 둥이들 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수유가 끝난 직후가 좋다. 하루 중 홀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긴 언젠가가 좋다. 이렇게 따지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네 아이들을 재우고 난 오밤중이 딱 들어맞는다.
운 좋게(?) 일주일에 3일을 빼고는 남편이 주짓수라는 운동을 하러 일을 마치고 저녁에 도장을 간다. 그래서 지치고 힘든 날이나 리프레쉬가 하고 싶은 날은 남편에게 카페라테를 사 오라 부탁한다. 문제는 거의 매일 부탁한다는 거다. 그래서 말 하기 뻘쭘하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단 몇 백 엔의 음료수로 온갖 좋지 않은 기분과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데. 피곤과 스트레스에 쩔은 짜증 섞인 눈빛과 말투를 마주한다고 생각해보라지. 거의 매일이 아니라 매일 사다 줘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다.
말할 때는 혀를 최대한 굴리면서 말한다. 발음이 재미있어져서 말하다 함께 빵! 터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뻘쭘한 기분이 숨겨지기도 해서 일석이조다.
오늘도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고 외칠 것이다. 있는 데로 혀를 굴리면서.
"카훼 라뛔 오네가이시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