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때 손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

일본 유치원 임원(幹事) 생활의 시작

일본은 아직 빠른 생일 제도가 유효하다. 그래서 2월생인 첫째는 3살이 되던 해 유치원에 입원했다. 유치원 입원일 2주 전쯤에는 둘째가 태어났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일주일 뒤. 그러니까 삼칠일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잔뜩 모이는 행사에 가게 된 것이다. 삼칠일 동안에는 집에서 아기랑 외출을 삼가고 몸조리를 하라던데 말이다. 몸이 부어있는 통에 준비해둔 옷이 꽉 끼어서 터질 것 같았지만 옷에 몸을 구겨 넣고 아이는 시엄마에게 맡기고 참여했다.


첫째는 초강력 엄마 껌딱지였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질 않는 통에 과연 혼자 유치원은 잘 갈지 한참 전부터 걱정이었다. 식을 하기 전에 엄마와 떨어져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다가 입장해야 해서 잠시 맡기고 나오는데 어찌나 두려움에 가득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지. 그래. 나도 처음이라 마음 아프다. 이것아. 뒤돌아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잘 부탁드린다는 한마디를 날리고 웃으며 뒤돌아 나왔다.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입장을 기다리고 조금 있자 큰 아이 반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선생님에게 안긴 채 모자는 뒤로 넘어가 있었다. 얼마나 울었으면 싶은 게 맘이 짠했으나 한편으로는 한 몸무게 해서 또래 아이들보다 무거운 녀석을 안고 계시는 선생님이 걱정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 소개와 인사와 사진 촬영 등을 마치고 다시 교실로 가서 다 함께 모여 앉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도 지나 있어서 슬슬 시엄마에게 맡긴 둘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유할 시간도 되어서 젖이 차고 있기도 했고, 생각보다 오래 걸린 탓에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임원을 정해야 한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응?


갑자기 분위기가 싸~ 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일순 모두가 고개를 숙이거나 딴청을 하며 선생님의 눈을 피하는 것이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유치원은 그냥 보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카레 도시락, 수영 도우미, 도서 도우미, 떡 찧기, 가을 소풍 등 일 년에 걸쳐 꽤 많은 행사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선생님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기에 엄마들이 도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각각 담당을 정해서 참여하게 된다.


이름만 들어도 무거운 느낌이 들고 왠지 반을 대표해야 할 것 같으면서 앞에 나와 선생님처럼 말도 해야 할 것 같은 역할이 바로 간사라는 것이다. 여기선 '칸지(幹事)'라고 하는데 각 반마다 3~4명 정도 뽑는다. 보통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아서 결정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가장 먼저 선출하게 된다. 그동안 선생님은 열심히 엄마들을 설득하고 엄마들은 최선을 다 해 눈을 피해 딴청을 부린다.


바로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걱정되던 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마 토모였다.

엄마와 친구의 합성어로 엄마 친구쯤 되려나. 문화센터 같은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가는 곳부터 시작해서 아이와 엄마가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있는 엄마들의 관계를 말한다. 즉 그 무리에서 무난하게 지내려면 엄마들과의 관계를 잘 쌓아야 한다는 것인데, 낯을 살짝 가리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말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었다. 그간 아이들과만 나다녀서 마마 토모는 유치원에서 잘해 보려고 생각했었는데 마마 토모고 뭐고 갑자기 임원을 정하는 일이 닥쳐왔다.


첫 아이를 보내는 엄마는 나 밖에 없는 건지 다들 알고 온 건지 멀뚱한 표정으로 두리번대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 빨리 집에 가서 둘째 수유해야 하는데...'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니와 가운데서 놀고 있는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떨어져 앉아있는 첫째를 다독이느라 입도 손도 바빴다. 입원식 내내 울었던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으면 안정이 될 것 같아서. 게다가 옆에서 전화기만 쳐다보던 남편 왈,


"하지?"


점점 안절부절못하고 자꾸 얼굴을 쳐다보니까 자기도 빨리 가고 싶다고 나보고 하란다. 그 말을 듣고 난 망설임 없이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번쩍 손을 들었다. 순간 "오~" 하면서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 '뭐여 이거.'


한 명이 정해지자 그다음은 금세 지원자가 2명 더 나와서 결정이 되고 나머지 담당도 순식간에 정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감하게(?) 지원해준 간사 3명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입원식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때. 남편의 한마디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첫째의 3년에 걸친 유치원 생활 내내 나를 임원으로 지원하게 만든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급기야 몰래 활동하기에 이른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놈의 손 번쩍 드는 버릇은 둘째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이쿠!'


내가 그때 손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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