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즐거우면 난 되었다.

이것이 유치원 친목회다!

첫째가 졸업하고 둘째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산을 끼고 있는 규모가 큰 유치원이다. 해마다 아이가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 제일의 맘모스 유치원*인 것은 변함이 없다.


행사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반 배정이 되고 맨 처음 서로 얼굴을 보기 위한 모임, 부모와 함께 하는 소풍, 다 함께 모여 뭔가를 만들어 먹으며 음식의 소중함을 배우는 食育(식육)이라는 모임, 카레 도시락, 진흙 놀이(논에 모내기를 하기 전 땅을 다지는 겸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해 준다. 도심에서 생활하는 경우 논을 보기도 힘든데 심지어 논에 들어가서 노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다.), 감자 캐기 등등등. 계절별로 잔뜩 있어서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는 많은 행사가 취소되고 축소되었다. 덕분에 임원을 맡고 있음에도 유치원에 자주 가지 않은 것은 좋은데 30명 전후인 반 아이들의 얼굴을 외울 수가 없다. 첫째가 다니던 때에는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이름과 얼굴을 다 외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누군지 둘째에게 물어보기 바쁘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에 유치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 년인데 취소되는 행사로 모여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서 내내 아쉬웠다. 그런데 2학기 들어서 코로나가 살짝 진정되자 반별로 친목회를 기획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단, 밖에서 최대한 짧고 굵게 한다는 조건하에서.


원래대로면 진급하고 반이 결정된 직후에 음식점에서 엄마들이 서로 얼굴을 익힐 겸 모여 점심도 먹고 수다도 떠는 것이'친목회' 라 불리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규 보육 시간이 짧은 수요일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모여 점심을 먹고 놀기로 결정하였다. 아이들도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엄마들도 서로 어울릴 수 있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며 말이다.


그러나 나에겐 데려가야 할 둥이가 있었다. 아장아장 잘도 걸어 다니지만 새로운 사람과 장소에서 낯을 가리는 그들! '둘째와 함께 데이트 겸 즐기고 와야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국 둥이와 함께 하는 트리플 데이트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유모차를 가져갈까도 고민해봤지만 산에서 노는 거라 태울 수 있는 장소가 한정돼 버린다.

친목회는 각 반의 임원들이 기획하고 진행한다.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맘 한 구석에선 '비나 와라. 비나 와라.'라고 간절히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전에 행사가 있던 날 아침 허리가 갑자기 맛이 가 버리는 바람에 움직이질 못해서 참석을 못 한 적이 있는데 그때처럼 되길 바라기도 했다.


틈만 나면 갱신 해대며 확인한 일기 예보는 아쉽게도 '춥긴 하나 맑음'이었다. 비가 오길 원했던 내 마음은 하늘에 가 닿지 않았다. 그리고 내 허리는 지난번 일 이후로 어떻게 된 일인지 더 튼튼해졌다. 제대로 단련이 돼 버린 듯했다. 이렇게 된 이상 기댈 곳은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그래! 가는 거다! 2~3시간만 버티면 되는 거다!' 몇 날 며칠을 이렇게 중얼 댔다.


드디어 나에겐 결전의 날과도 같은 친목회 날이 왔다. 임원이라서 준비를 위해 일찍 가야 했는데 하필 데려다 주기로 한 남편 회의 시간과 겹쳐서 생각보다 더 빨리 가게 되었다. 이로써 내가 둥이를 매고 있어야 할 시간이 예상보다 늘었다. 예상시간은 3시간. 60 x 3 = 180. 180분. 그러나 남편의 일로 15분이 추가! 180 + 15 = 195. 195분! 그렇다! 나는 195분 동안 둥이를 앞으로 매고 뒤로 업고 친목회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큰 소리로 남편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よっしゃ!(욧쌰! 힘을 불어넣고 싶을 때 말하곤 하는데 이 경우 할 수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를 외치고 둥이와 차에서 내렸다.


친목회를 하기로 한 곳은 '탐험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었다. 3년 전쯤인가? 유치원의 부지였던 산을 선생님과 부모 지원자들이 다듬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오픈했다. 듣기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준비를 빌미로 임원들과 모여 먼저 들어가 보았다.


친목회_탐험촌입구.jpeg 탐험 마을 입구

저기 어두운 듯한 나무 그늘 사이로 흰색 비슷한 반짝이는 입구가 보이는가? 사진으로 보니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는 않다. 저 입구를 지나면 신사로 가는 계단길이 이어지는데 거길 건너 있는 또 다른 입구를 들어가면 탐험 마을이 시작된다.


유치원친목회.jpeg 탐험 마을의 일부

캬~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부모들을 데리러 갔다. 모두 모여 접수를 하고 각자 점심 준비를 시작했는데 역시 아이들이 모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제멋대로 뛰고 떠들고 벌써 밥을 먹기 시작하질 않나. 이것이 즐거운 아이들과의 모임의 묘미 아니겠는가. 이런 것쯤은 다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모두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나도 둘째와 합류했다. 그런데 이런. 둥이가 내려와 주질 않았다. 조금 앉으면 징징대고 내리면 울고불고하는 통에 둘째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밥을 먹으려던 내 계획은 가볍게 날아가버렸다.


다행히 같은 둥이 엄마가 선둥이를 안아준 덕에 싸간 주먹밥은 먹을 수 있었다. 웬일로 낯선 사람 품에 안긴 선둥이는 편안한 표정으로 형과 누나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봐 주었다. 이것이 둥이를 키워본 사람의 힘인가. 둘째네 반에 둥이 엄마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이로써 내가 둥이를 이고 지는 시간이 조금은 줄었다. 오예!


아이들이 예상보다 빨리 밥을 먹고 뛰어다녀서 친목회를 좀 더 빨리 진행하기 시작했다. 얼른 정리를 부탁하고 모여서 운동회 때 췄던 춤도 추고 선생님과 OX 퀴즈도 하고 탐험 마을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인데 내 어깨는 이미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순조롭게 잘 커주는 둥이들 덕분에 그런 거니 이건 감사해야 할 일인가?


이미 내달려서 탐험 마을을 휘젓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겨우 모아 빙고카드를 나눠주고 탐험 빙고를 했다. 어찌나 반응이 좋던지 한두 줄만 빙고를 만들어도 된다고 했더니 한 명도 빠짐없이 죄다 완성했다.

친목회_빙고.jpeg 자연탐험 빙고 카드

유치원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둘째도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주로 나에게만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즐거움이 전해져서 좋았다. '맞다. 너만 좋으면 된 거지.' 애기띠가 천근만근 느껴져서 흘러내리는 느낌에 자꾸만 끌어올려댔지만 신나 하는 둘째의 모습에 힘이 났다.


마지막으로 빙고를 마친 모든 아이들에게 과자와 비눗방울이 든 선물을 나눠줬다. 서로 보여주며 자랑해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하고 성공적인 친목회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둘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의미 있었다.


해산할 시간이 지나고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한계에 다다른 나는 집으로 우릴 데리고 가기 위해 근처에서 일하며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핑계로 둘째와 유치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온 나는 둥이들과 함께 뻗었다...


"그래도 뭐, 둘째야. 너만 즐거우면 난 되었다."




* 맘모스 유치원

정확히 몇 명이라는 기준이 있는 것 아니지만 대략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수가 100명 정도면 소규모, 200명 정도면 중규모, 300명 이상 되면 맘모스 유치원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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