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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가 끝나면 싸움이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들과 목욕을 한 뒤 잘 준비를 한다. 대충 저녁을 6시쯤 먹고 7시 전후로 샤워를 하거나 목욕탕에 물을 받고 들어가거나 어찌 됐든 씻는다. 그리고 양치질을 하면 그때부터 1시간 + 보너스 타임의 티브이 보는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엄청 좋아한다. 티브이를 볼 수 있다는데 안 좋아할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잠들 때까지 내내 틀어주지는 않는다.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티브이나 스마트폰의 악영향을 알고 있기에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안 보여주자니 이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줄도 아는 어린이가 되어 무조건 안된다고 하기도 뭐하고... 아니 사실 다 핑계고 이제껏 보여줘 놓고 갑자기 안 보여줄 수가 없기에 보여주긴 한다. 제한 시간 동안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잠 잘 준비가 빨리 끝나면 한 사람당 30분의 시간을 할애해주고 그렇지 않은 날은 20분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리퀘스트 타임'이라고 부른다. 다 보고 나면 보너스로 8분 전후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한 사람당 하나씩. 그걸 다 보면 하루 동안 열심히 학교 혹은 유치원에 다녀오고 생활한 포상으로 둘이서 하나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골라보고 잠자리에 든다. 여기까지는 좋다. 첫째는 티브이 리모컨을 잘 다루지 못하고 시간 계산이 미숙한 동생의 보고 싶은 동영상을 찾아도 주고 얼마나 보면 되는지도 확인해준다. 이 때는 대체로 사이가 좋다. 상대방을 잘 꼬드기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니 절로 친절이 베어 나온다.


문제는 리퀘스트 타임이 끝나고부터 시작된다.


우리 집은 아빠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거실에서 잔다. 침실은 둥이를 낳고부턴 자다가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수유도 뭐도 하다 보니 여유공간이 없기도 했고 어쩌다 첫째와 둘째를 재우는 날도 새벽에 꼭 거실로 와서 아예 함께 모여 자기로 했기 때문이다. 늘 캠프라도 하는 기분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작아서 이불이 몇 장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크고 두꺼운 이불 한 장에 작은 담요 두장 정도로도 다 같이 덮고 자기에 충분했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던 어느 날, 아이들이 이불에서 다리가 나와서 춥다고 툴툴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렇게 큰 건지 이제 다 같이 이불속에서 몸을 댑히려면 몸이 꼭 부대낀다. 그래서 이번엔 두툼한 담요를 샀다. 왜 원래 있던 이불과 같은 것을 사지 않았을까. 제삼자로 둘의 싸움을 보는 내가 갈등의 원인으로 꼽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서로 다른 이불 기도하다.


먼저 잠자리에 든다. 그럼 눕는 위치에 따라서 서로 발이 닿아버리는데 여기서 파이트!!! 그렇다. 싸움이 시작된다. 네가 옆으로 가네 마네 발을 치우네 마네. 발을 서로 밀어대고 이불을 나눠 덮으라고 하면 서로 같은 이불을 서로 덮으려고 난리. 그래서 공평하게 덮어준다고 덮어주면 내 쪽이 이불이 없네 어쩌네


이래도 징징. 저래도 징징. 서로 3살 차이 나는 오빠와 동생인데 오빠는 왜 배려를 하지 않는가. 동생은 왜 좀 더 살갑게 오빠에게 말하지 못하는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오빠에게 지기 싫어하는 둘째와 그런 둘째를 봐줄 수 없는 오빠의 라이벌(?) 관계에서 시작된 고집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원인인 건가. 왜 티브이를 볼 때는 사이좋게 머리맣대고 앉아서 보면서 끝나고 나면 티격태격거리는 걸까. 더 보고 싶은데 못 보니 짜증이 나서?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다 둘째가 울면서 사태는 보다 복잡해지기도 한다. 둥이를 재워야 하는데 자기를 봐달라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요구해대면 나는 그저 멀리 떨어져서 최대한 조곤조곤 사태를 설명하며 지켜보려고 노력한다. 닭똥 같은 눈물과 함께 맘 속에 울분도 다 토해내길 바라면서.


결국은 어떻게 되냐고?


첫째도 둘째도 내 다리에 붙어서 손 마사지 혹은 발 마사지 혹은 등 토닥을 받으며 잠이 든다. 그럼 난 양 허벅지에는 둥이를, 양다리에는 첫째와 둘째를 단 상태가 되는데 모두의 평화를 위한 거라면 뭔들 못하겠는가. 내 한 몸 내주고 해결할 수 있으면 언제든 오케이.


즐거운 놀이의 뒤에 남는 아쉬움도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티브이가 즐거운 놀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시간을 정해서 보고 끊는 것도 스스로를 절제한다는 의미에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나쁜 점을 생각해서 최대한 못 보게 하고 놀리면 아주 좋겠지만 그보다 먼저 그렇게라도 내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소망이 앞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적절한 절제를 가리키면서 아쉬움을 다음에 있을 즐거움에 대한 기대로 바꿀 수 있도록 연습해봐야겠다. 그러면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더 기분 좋게 잠이 들 수 있겠지. 이불속에서 발이 좀 닿더라도 기분 좋게 서로 슬쩍 옆으로 비껴 줄 마음도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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