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 당신이 옳다. 정혜신
얼마 전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공감에 대한 구절에서 어떤 그림책이 떠올랐다. 봄 무렵에 본 카스티요의 <핑!>이라는 그림책이었다. 탁구공을 '핑!' 하고 쳐 상대방에게 보내면 '퐁!' 하고 되보내준다고 했다. 이 핑과 퐁은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웃으며 날려도 되돌아오는 것은 짜증일 수도, 울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 마음을 다 해 핑을 보내면 언젠가 퐁! 은 돌아온다고 말한다. '열린 마음'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기다리면 말이다.
공감이란 핑! 을 보내고 또 보내며 언젠가 돌아올지 모르는 퐁! 을 기다리는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내 기대와 다른 상대방의 반응에 상처 받지 않고 끊임없이 마음을 전하며 기다린다면 주파수가 맞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여중을 나왔는데 같은 반에 소위 왕따인 친구 A가 있었다. 처음엔 말 수가 적은 아이였다고 기억하는데 그 때문인지 놀자고 다가가서 말 거는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던 어느 날의 일이다. 갑자기 내 옆에 있던 아이가 A에게 다가가더니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서 반으로 나눠 안을 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뭘 보라는 건가 싶어 황당해하는 나에게 머리를 잡고 있던 아이는 요즘 세상에 '이'가 있다면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들어는 보았는가? '서캐*'. 머릿속에 사는 벌레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가지 싶다. 그거 초등학교 다닐 때 나도 있어봤다. 그게 뭐 어떻다고?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누군가를 놀리고 뒷담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나. A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고 아이들이 뭐라고 해도 화내지 않는 그 아이가 궁금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 틈틈이 말도 걸어보고 청소시간에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가서 근처를 쓸어대곤 했다.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곧 주파수가 맞는 순간이 왔다! 내 물음에 대답을 하게 되더니 아침에 교실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집에 가는 방향도 같아서 같이 가기라도 하는 날엔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내 깔깔 웃어댔다. 자연히 주변에 같이 노는 친구도 늘어나 어느새 A는 잘 웃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핑퐁 게임하듯 주고받는 동안 공감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데 주저하고 있는가?
내가 보낸 핑! 에 퐁! 하고 반응이 오지 않아 속상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은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라 시무룩해져 있는가?
주저 없이 핑! 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느긋하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퐁! 이 돌아온다. 계속해서 보내도 좋지 않을까. 물론 상대방에 따라 다르다.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하는데도 나 좋답시고 자꾸 신호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조그만 퐁이 돌아오면 다시 핑! 을 보내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되어 있으리라.
모두가 공감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대하는 세상은 참 따뜻하겠지. '나부터'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핑!
서캐*
이 글을 쓰면서 '서캐'라는 단어에 대한 기억이 맞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미 없어져서 옛날 고리짝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머릿니' 라 불리며 아직도 있었다! 아니 옛날에 지저분한 환경에 잘 안 씻어서 생기는 것 아니었나? 머리를 감고 말리지 않고 잠을 잔다거나 잦은 해외여행으로 해외에서 감염되어 오거나 하는 것도 다양한 원인의 하나였다. 나만 조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지내는 누군가가 감염되어 있을 경우 금세 옮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