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증거

비 내리던 지난주 목요일. 첫째를 뒷문에서 보내고 올려다본 단풍나무에 빗방울이 조롱조롱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고 부슬비를 조금씩 모아 몸을 부풀리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둥이들의 턱을 한동안 타고 흐르던 침방울이 생각났다. 한껏 모아두었다가 떨어지는 모양새가 똑같았다.


문득 침방울이 묻었을 때 차가웠던 것이 생각나 나무에 손을 대보고 싶어졌다. 손가락을 쫙 편채로 나무에 손을 올려놓아보았다. 차갑다. 밤새 내린 비를 머금어서 그런지 조금은 겉껍질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색도 진해진 것이 꼭 젖을 먹으며 줄줄 흘린 침에 젖어든 내 옆구리 옷자락이 생각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서 몸이 움츠려 들어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며 옷깃을 꼭 여몄는데 나무는 이렇게 젖어서 춥지도 않을까.


한껏 온몸으로 빗물을 빨아들인 나무는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달려있는 색 바랜 단풍잎도 하늘로 뻗어 올린 앙상한 가지도 싱그러워 보였다. 가지 끝까지 구석구석 물기가 전해진 탓일까? 햇빛 아래서 봤을 때는 어딘가 구부정해 보이던 가지와 이파리들이 쭉 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기분 좋다고 흥얼대는 콧노래 소리처럼 들렸다.


나도 아직 어린 둥이들과 하루 종일 부비적대다보면 입고 있는 옷 혹은 몸 어딘가가 축축해져 있다. 나무가 떨어지는 빗물을 머금고 있던 것처럼. 둥이들의 턱을 타고 줄줄 흐른 침이, 자기가 먹겠다고 숟가락을 들고 입까지 허우적대다가 흘린 이유식이, 입에 넣고 쫄쫄 빨다가 꺼낸 손으로 내 옷을 꼭 부여잡은 통에 손자국이 남기도 한다. 목욕한 뒤 젖은 머리를 대충 닦아내고 양다리에 눕힌 채 수유를 하다 보면 내 허벅지는 땀인지 물인지로 젖어서 축축해진다. ‘뭔가 이상한데?’ 하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젖은 곳을 만지기라도 하면 ‘또야’ 하는 생각과 함께 닦을 무언가를 찾기 바쁘다. 특히 집안이 냉장고인가 싶게 밖이 더 따뜻하다고 생각되는 요즘 날씨에는 “앗 차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나무가 물을 얇은 가지와 뿌리 끝까지 전하며 활기를 심어주는 것처럼 차갑고 찝찝하게 느껴지는 나의 젖은 옷자락과 몸 어딘가는 나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둥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빨이 나느라고 침이 폭발해서 줄줄 새는 것이고 밥 먹느라 고생하면서도 스스로 해보려고 노력하느라 사방팔방 묻히다가 나에게도 묻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행복의 증거일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축축함이 느껴지면 얼굴을 찌푸리지 말고 온몸을 쭈욱 펴고 열심히 크고 있는 둥이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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