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와인(가제)_끝

초대

”아 씨”


주삿바늘은 커다란 호를 그리며 날아가다 민우의 팔뚝에 꽂혔다. 언제 눈치챘는지 내 팔을 순식간에 밀쳐버렸다. 목을 노리던 바늘은 단단한 팔뚝을 쑤시고 들어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주사기 안에 찰랑대던 것이 민우의 몸 어딘가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또 하나. 놀래서 그랬는지 목을 잡고 있던 나머지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도망갈 기회는 지금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세를 바로 하기 전에 목에 있던 팔을 두 손으로 잡아떼고 이빨로 물어버렸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놈의 와인 한 모금만. 반짝이는 붉은빛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숨을 쉴 때마다 콧 속에서 느껴지는 향을 놓치기 싫어서 숨 쉬기도 아까웠다. 민우는 소리를 빽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달렸다. 순식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문이 어딨 더라. 양 옆으로 유혹하듯 와인 병들이 나타났다. 콧 속으로 스모키 한 향이 진하게 밀려들어왔다. 머릿속이 얼른 와인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으로 어지러웠다.


저 앞에 문이 보였다.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문은 금고처럼 두꺼운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웃기는 건 안쪽에는 손잡이처럼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 씨발”


급하게 돌아서서 바라본 쭉 뻗은 통로 끝에 민우가 가만히 서 있었다.


“세훈아. 초대장은 원래 한 사람을 위한 거거든. 빌어먹을 와인에 어울리는 사람. 그런 피를 가진 사람. 너 선택받은 거야 새끼야. 고맙지 않냐?”


“그래. 뭐 더럽게 고맙다.”


먹을 것의 재료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재료로 만든 먹을 것의 맛은 궁금했다. 저 크고 듬직한 놈으로 만드는 와인은 어떤 맛일까.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옆에 있는 와인 병을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최악의 경우 와인 밖에 더 되겠어. 이상하게 꺾인 목소리가 뻣뻣한 목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도움닫기를 하듯 다리에 몸무게를 실었다. 민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점점 커지는 민우가 사정거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쪽 팔에 든 묵직한 와인병을 휘둘렀다.


쨍그랑 소리를 기대했는데 와인병은 퍽 소리만 내며 금이 갔다. 이상하게 민우가 아닌 내가 와인장 쪽으로 날아갔다. 유리병 위로 날라 떨어지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등에 유리가 박혔는지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비척대며 일어나려는 내게 민우의 단단한 다리가 달려들었다. 아. 아까도 발에 차인 모양이었다. 재빠른 새끼. 머리를 맞았는지 초점이 흐릿해진 눈에 귓가에 피를 흘리는 민우가 보였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 깨진 병 조각도 굴러다니는 병도. 그러다가 병 조각이 민우의 다리에 박힌 모양이었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묵직한 것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어 이 새끼가 좀 하는데.”


붉은 와인이 널브러진 바닥과 천장이 빙빙 돌았다. 그 와중에 풍기는 향은 끝내줬다. 깨진 병 조각을 그러지고 민우 쪽을 향했다. 녀석은 몸을 가누질 못한 채 쓰러져서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혀가 꼬이는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서 발로 건드려보았다. 들여다본 민우의 눈빛은 멍하게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주사기에 들었던 게 듣고 있는 건가?


갑자기 긴장이 풀려 와인장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아버렸다. 참았던 요의가 폭발하듯 밀려와서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을 줬다. 바지춤이 축축해졌다. 시원했다. 뱃속을 비우고 나니 이번엔 목이 말랐다. 에라 모르겠다. 깨져서 굴러다니는 와인 병을 가져다가 대충 목을 적셨다. 그래. 이걸 먹고 싶었어. 멈출 수가 없어서 되는대로 마셨다.



술을 먹다 잠이 들었나. 몸을 툭툭 치는 것 같은 느낌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


민우인 줄 알고 손에 힘을 주고 둘러본 곳에는 왠 시뻘건 옷을 입은 사람 여럿이 서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번들번들 광이 나는 구두를 신은 그들 중 한 명이 오렌지빛처럼 보이는 황갈색의 와인이 담긴 잔을 내게 내밀었다. 스모키 한 쵸코향이 훅 끼쳤다.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30년간 숙성시킨 로호 앙헬입니다. 최고급 품이죠. 시간, 노력, 엄선된 재료의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물건입니다. 앞으로 저희에게 엄선된 재료를 제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답은 이 최고급 로호 앙헬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뭐라고 하는 거야.


“초대장은 매월 한 장씩 와인과 함께 배달될 것입니다. 저희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스모키 한 향 속에 시쿰한 땀 냄새와 지린내가 진동하던 그곳에서 나는 최고급이라는 빌어먹을 와인 맛을 알아버렸다. 하루라도 입에 대지 않으면 몸이 기억하는 향과 맛이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매달 난 최고급 와인에 딱 어울리는 재료를 찾아서 초대장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대장은 다음 한 달간 보내지지 않으므로. 왜 그런지 모르지만. 하여튼 난 스모키 한 쵸코향의 황갈색빛이 나는 그것을. 매달 미묘하게 다른 맛이 참을 수 없는 그것을 이제는 그만둘 수 없게 돼 버렸다.




“혹시 와인 잘 알아요? 끝내주는 와인 품평회가 있는데 관심 있어요?”

홀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싱그러운 그녀에게 피처럼 붉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번 달에 보내져 올 와인생각에 입에 침이 고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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