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에 가까운 파란 하늘에 입김을 하아~ 하고 불어내면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가만히 있으면 차가운 바람에 입고 있던 옷을 절로 여미며 몸이 부르르 떨리는데 맨발로 정원에서 뒤뚱대는 둥이들을 쫓아다닐라치면 티셔츠 바람에도 춥지가 않다.
9년 전 그때도 그랬다. 그 해 겨울은 추웠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 첫째를 뱃속에 넣고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라 부른 배를 하고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된다고 있는 데로 껴 입고 다녀서인지 아니면 회사 같은 팀 동료였던 Z 덕분에 빨빨거리며 돌아다녀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때 게임회사에서 팀의 리더로 일을 하고 있었다. 엔지니어 중에 Z가 있었는데 그녀와 나는 나이도 국적도 같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입사할 때부터 왠지 모를 친밀감을 가지고 가끔 밥을 함께 먹곤 했다. 같은 팀이 되고는 그녀의 잘 들리지 않는 한쪽 귀에 대해 알지 못했던 내가 감정이 상하는 발언을 하면서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우리 사이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늦은 퇴근 시간 함께 역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수고했다며 맥주잔을 부딪히기도 했다. 작업을 할 때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히 확인해주는 그녀가 참 든든했다.
어느 날 아침. 늘 하는 팀 회의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기획자가 유독 사이가 좋던 우리는 언제나처럼 하하호호 진행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Z가 공기가 답답하지 않으냐고 먼지가 많은 것 같다고 한마디 했었다. 우린 난방 온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냐며 환기 좀 하자는 둥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다. 문득 돌아본 창문 밖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멀리까지 선명히 보이는 것이 먼지 따위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몸 상태가 안 좋다며 조퇴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핸드폰용 게임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일이었는데 이 운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알아서 게임을 하도록 두고 문제가 생기나 안 생기나 체크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매번 이벤트를 만들어 열고 진행사항을 체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장치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때도 이벤트 오픈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 데이터 확인 작업과 시스템 개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이 안 좋다면서 일찍 들어가는걸 왜 그렇게 미안해하던지… 나는 아픈 거 먼저 낫고 그다음에 2배 3배로 일해주면 되니 걱정 말고 병원에 다녀오라고 그녀의 등을 밀었다. 뒤돌아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힘겨워보여 부축해주고 싶을 정도였던 것을 기억한다.
다음날. 그녀는 휴가를 냈다. 그리고 또 다음날. 내 앞으로 한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어떤 치료를 위해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혈전*이 생겼다면서 언제 퇴원할지는 모르지만 치료를 받고 있으니 건강해져서 다시 회사로 나온단다. 12월 초였다. 회사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가벼운 맘으로 팀원들과 언제 병문안을 갈지 이야기했다. 나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 채팅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할 게 없어 심심하니 테스트하는 작업을 도와준다며 하지 않아도 되는 걸 도맡아줬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금방 털고 일어나서 웃으며 돌아올 줄 알았다.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월요일. 그날 역시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은 소식을 실어다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릇처럼 아침인사를 보냈는데 답변이 오지 않았다. 신경이 쓰여 틈날 때마다 들여다본 채팅창에는 보낸 글에 ‘기독’ 표시가 붙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병원으로 와달라는 그녀의 엄마로부터의 메시지가 왔다. 급하게 회사에 설명하고 병원을 향하던 중에 Z가 혼수상태인 것을 알았다. “혼수상태라고?”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해석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내가 무슨 단어를 읽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돼서 눈을 비비고 읽었는데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전철역 홈에서 시끄럽게 오가는 전철들 사이에 서서 회사에 그녀의 상태를 설명하는 연락을 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크고 확실하게 내기 위해서 온 힘을 쥐어짜야 했다. 말할 때마다 폴폴 나는 입김 탓인지 안경이 뿌예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낯선 일본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침대에서 그녀는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나를 맞았다. 내가 그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선물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바랬지만 바람으로 끝이 났다. 그 무렵 나는 출산을 한 달 반 정도 남겨두고 있었는데 일하랴 병원 다니랴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기 바빴다. 매일같이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말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지만 뛰듯이 걸어 다니느라 뜨거워진 몸에서 나오는 김 같이 느껴졌다.
Z는 결국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26일 끼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때고 하늘로 갔다. 통역을 핑계로 병원을 오가던 나는 다행히 그녀가 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시내에 한 커다란 화장터에서 그녀와 친분이 있던 회사 동료들이 모인 가운데 그녀는 태워져 작은 상자에 담겼다. 일본에서 장례는 치러본 적이 없는데 일일이 부모님께 설명을 드려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화장이 끝나고 부모님이 하시는 말을 회사 동료에게 전해야 했는데 머릿속이 멍해서 뭐라 통역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단어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서 내 멋대로 감사인사를 해버리고 끝낸 것 같다. 항상 이 순간이 마음에 남아서 제대로 인사말을 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화장터를 나오며 본 하늘은 여전히 높고 새파랬다. 구름 한 점 없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파란 하늘을 향해 하아~ 하고 입김을 불 때마다 Z가 생각난다.
그녀는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영정사진에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웃음을 띄우고 있었으면 좋겠다.
*혈전 :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진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