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주문하신 음식 내어드릴까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영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긴 머리가 찰랑였다.
“네? 주문이요?”
“네. 예약하신 정수복 님께서 주문하신 코스가 있습니다.”
“아. 아직 기다리는 중이라서요. 조금 이따 오면 부탁드려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당황스러웠다. 코스라니 무슨 소리지. 아영은 20분이나 일찍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뭘 찾는지 계속 두리번대느라 바쁘다. 어디선가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꼭 자신의 몸인 것만 같아 아까부터 냄새의 근원지를 찾는 중이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부모님이 작정이라도 한 듯 물고기를 한 트럭이나 보냈다. 수복에게 연락을 받은 게 어제저녁이니 말리고 자시고 할 수도 없었다. 오후 내내 정리하느라 땀을 쪽 뺐다.
사실 약속을 핑계로 오후에는 가게문을 닫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늘 가게 동물들을 담당해서 가져다주시는 이 씨 아저씨가 왔다. 트럭 수조에 물고기가 가득 있다며 좀 도와달라고 하셨다. 급하게 나가본 트럭에는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주황색으로 물든 배가 납작한 달걀 같은 몸통을 한 물고기가 눈에 띄었다. 아래턱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이 화가 나서 토라진 수복과 닮아 귀여웠다. 꼭 달빛에 비친 바닷물처럼 몸이 반짝반짝 빛났다. 수복과 함께 밤기차를 타고 갔던 부산의 밤바다가 떠올랐다.
커다란 수조를 몇 개나 깨끗이 준비하고 수초를 깔고 물을 넣느라 땀을 쪽 뺐던 것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몸에서 나는 냄새나 신경 쓰이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전화기가 요란한 진동소리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할 것도 없이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수복 씨. 어디예요. 무슨 일 있어요?”
뭐라고 하는 소리가 지지직거리는 잡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수복 씨!”
주변에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아영 쪽을 향했다. 그러지 않아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사람이 아영밖에 없었다. 대부분 어디 클래식 콘서트라도 가는 것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괜히 무릎 위에 깔았던 냅킨을 꽉 그러지며 눈으로 별 것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미리 말도 제대로 안 해준 수복이 원망스러웠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어디 있어요.”
최대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말하려고 애썼다. 수복의 목소리는 라디오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것처럼 흐트러진 채 들려왔다.
“뭐라고요? 한 번만 더. 네? 아... 걱정 말아요. 내가 또 한 먹성 하는 거 알죠? 2인분 먹으면 되죠. 네? 언제라고요?”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몸을 둥그렇게 말고 통화하느라 진땀이 났다. 전화를 끊고 그러쥐었던 냅킨으로 물기가 묻은 액정을 닦아냈다. 깨끗해진 화면 위로 물방울이 떨어져 흘렀다. 아영은 이를 꽉 깨물고 웃으려고 애썼다. 눈가를 한번 꾹 누르고 저 쪽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웨이터를 향해 손을 들었다. 짧은 한 숨을 내뱉고 허리를 쫙 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았다.
수복은 잘 들리지 않는 전화기 너머로 어디를 가야 한다고 했다. 어딜 간다고 한 걸까.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던가. 몇 박 며칠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손님,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네. 여기 주문한 요리 가져다주세요.”
“다른 분 요리는 취소해 드릴까요?”
“아니요. 다 가져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영은 오후 내내 물고기를 만져대서 속이 울렁거렸다. 한 먹성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식성이 좋았다고. 늘 식당에 가면 일 인분을 먹지 못하고 남기는 게 일이었다. 아까 수복은 시켜놓은 코스 요리가 어쩌고 저쩌고 했었다. 아까워서 그러나 싶어 다 먹겠다고 큰 소리를 탕탕 쳐버렸다. 어이없는 것은 항상 데이트하면서 아영이 남기는 요리를 먹어치우는 수복이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는 것이다. 이쪽 소리도 전달이 잘 안 됐던 걸까. 속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목이 마른 것 같아 앞에 있는 물을 들이켰다. 고상을 떠느라 조금씩 마셔대서 그런가 갈증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주문하신 요리 나왔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커다란 접시에 깔끔하게 담겨 나왔다. 조명을 받아 번쩍이는 은빛의 원통형 통에는 얼음과 함께 와인이 들어 있었다.
“식전 와인입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와인이 투명한 잔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채워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