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이어 메다카
“아영 씨. 거기 있죠? 문 좀 열어봐요. 아영 씨.”
수복은 며칠째 가게를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개인사정으로 잠시 휴업을 한다는 종이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휘날렸다. 수복은 전화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고 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딜 가신 걸까. 그의 반대쪽 손에 들린 동그란 수조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 젊은 양반.”
고개를 돌리자 땅딸막한 노인네와 눈이 마주쳤다.
“내 저기 이발소에 있는 사람인데. 여기 아가씨 찾아왔지? 가게에서 자주 봤어. 아가씨랑 친한 사이 아니야? 여 아가씨 얼마 전에 쓰러졌어.”
수복은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어, 어, 이보게 괜찮아?”
이발소 노인은 수복이 들고 있던 수조가 떨어질세라 얼른 받았다.
“저, 그게 언제인가요.”
멍하게 풀린 눈을 하고 겨우 가게 앞 유리에 몸을 기댄 수복이 중얼거렸다. 갑작스러운 출장을 가게 됐던 그날이 떠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아영에게 전화를 했었다. 운전하는 세영의 눈치를 보느라 없는 동생을 핑계로 대 버렸다. 출장 기간 내내 처음을 만끽하느라 아영에 대해 잊고 있었다. 내 팽개쳤던 전화기를 들여다보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아영으로부터 온 전화가 수십 통에 달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글세.. 한 일주일쯤 되지 않았나? 전에 언제 물고기가 잔뜩 들어갔거든. 그러고 다음날 피곤했는지 아침에 문 열다가 쓰러졌잖아? 지나가던 손님이 보고 구급차 불러서 병원으로 데려갔어. 아마 퇴원은 했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저 가게 원래 주인 있잖아. 거 아가씨 부모되지? 그 사람들 연락처라도 알려줘? 무슨 일 있으면 알려달라고 나한테 연락처를 알려줬거든.”
“괜찮습니다. 그거 좀 나중에 전해주세요.”
“이거? 이게 뭐여. 꼭 멸치같이 생겼는데.”
“좀 그렇죠? 사파이어 메다카라는 거예요. 그냥 주시면 알 거예요.”
수복은 그 말만 남기고 비척거리며 상가를 빠져나갔다. 왠지 두 번다시 아영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편지라도 써서 남기고 올 걸 그랬나. 상가밖으로 나가니 햇볕이 눈이 부셨다. 찡그린 눈에 반짝이는 오픈카가 들어왔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세영이 환하게 웃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는 듯 수복은 유령처럼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를 길가로 난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그 눈은 무표정하게 한 남자의 뒷모습과 웃는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은 가벼운 키스를 나누더니 쌩 하니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전화기를 귀에 댔다.
“여보세요? 아 엄마. 오늘은 열어야지. 괜찮아. 언제 와? 이제 물고기는 그만 찾고 가게 좀 보세요. 딸내미도 좀 쉬어야지. 알았어.”
그럼 그렇지. 그 일리가 없었다. 매일 딱 한통. 전화 한 통만 해주길 바랐다. 아니. 메일 한통이라도 좋았다. 그날 혼자 꾸역꾸역 2인분을 다 먹고 집으로 왔던 아영은 밤새 끙끙 앓았다. 내내 먹은 것을 토해내고 수복에 대한 원망을 채웠다. 그녀는 지지직대는 전화기 너머로 어떤 여자의 웃는 목소리를 들었다. 한 번이라면 듣고 넘겼을지도 모르지만 배경음처럼 그 소리는 계속 귓가에 울렸다. 그 웃음소리를 머릿속에 새겼다.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수복이 연락한 번만 해준다면 다 잊을 수 있었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화를 기다리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계속되었다. 결국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일주일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수복에게서는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계속해서 연락을 해보았지만 답변조차 없었다. 아영의 마음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리고 방금 전 창문 너머로 그 웃음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처음 보는 여자였지만 낯이 익었다. 수복은 힘없이 비틀거리면서도 그녀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길을 향한 창문에 아영의 방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 그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아영의 꽉 깨문 입술이 핏기를 잃고 하얗게 변했다. 그녀의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