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중간고사를 마친 날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에 난 평소에 잘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아파트 상가를 가로질러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나는 김에 늘 눈여겨봐 두었던 상가 동물원에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빠는 이 길은 절대 가지 말라고 했었다. 재미있는 가게가 많아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 길을 지나가면 집까지 가는 길도 가깝고 좋은데 왜 다니지 말라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상가는 꽤나 컸다. 왼쪽으로 나가는 골목 끝에 제일 좋아하는 가게가 있었다. 사실 아빠 몰래 몇 번이나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없는 게 없었다. 친구들은 간판 없는 수족관이라 불렀지만 나는 상가 동물원이라고 부른다. 정면에서 보이는 곳이 온통 유리로 된 그곳에는 커다란 수조가 있었다. 가게 앞에도 작은 새가 짹짹대는 케이지부터 햄스터가 들어 있는 케이지까지 동물들이 잔뜩 있었다. 꼭 작은 동물원 같았다.
숫기 없던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혼자 다녔는데 수업이 끝나고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피해 가끔 이 상가를 지나다녔다. 가게 역시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곁눈질로 쳐다보는 것이 다였다. 간판도 없는 이런 가게에 늘 손님이 있어서 신기했었다.
있는 대로 몸을 부풀리며 크게 숨을 들이쉬고 열려있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동물의 배설물 냄새인지 뭔지 기분 나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둘러본 가게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어두웠다. 한쪽 면이 수조로 가득해서 다른 세상 같았다. 수조 안에서부터 새어져 나오는 푸르뎅뎅한 빛이 다른 세상을 신비하게 만들었다. 이름 모를 갖가지 물고기들이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멍하니 쳐다보는 눈길을 끄는 녀석들이 있었다.
작은 송사리 같은 것들이 발발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채로운 색깔에 자세히 보니 모양도 다 달라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메다카”
“에?”
“이 물고기 이름이 메다카라고.”
갑작스레 얼굴 옆으로 긴 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잠시 손가락이 말을 한 건지 헷갈렸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서 펄쩍 뛰듯 뒤를 돌았다. 콧 속으로 꽃냄새 같기도 한 달콤한 향이 밀려들어왔다. 어떤 아줌마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눈이 가느다란 것이 꼭 초승달처럼 보였다. 그 아줌마는 웃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지 내 앞에 물고기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움직임에 따라 길게 늘어진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때마다 좋은 향이 진해지는 것 같았다. 몸을 움츠린 채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얘, 너 뭐 죄 졌니?”, “뭐 보러 왔어?”, “너 여기 전에도 온 적 있지?”, “근처 살아?”
그녀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마치 한참 동안 입이 근질거렸던 듯. 말할 사람이 없어 심심했나 보다. 동물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상한 아줌마다.
“너 여기 지나갈 때 내가 봤는데. 가끔 밖에 있는 잉꼬한테 불량식품 던져주더라. 얘. 그러면 안돼. 잉꼬는 불량식품 같은 거 안 먹거든. 걔 입 비싸다? 정 주고 싶으면 집에서 사과 가져와.”
첫 만남 이후로 나는 동물에 별 관심이 없었음에도 자주 그 가게를 드나들었다. 갈 때마다 집 냉장고를 뒤져 꼭 사과를 챙겨갔다. 가만히 있어도 말을 걸어주는 아줌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좋았다. 피아노를 잘 칠 것 같은 기다란 손가락도. 움직일 때마다 찰랑대는 머리카락도. 웃을 때 초승달이 되는 눈도 좋았다. 우리 엄마는 항상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본다. 우리는 웃으며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맨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얼른 하고 칭찬받으러 가면 그거밖에 못 했냐.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면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내가 무슨 말만 해도 웃어주는 아줌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이 물고기 밥을 주고 강아지 데리고 산책도 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 요즘 매일 친구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가게에 다닌다. 상가길을 다니지 말라고 했던 아빠는 내가 뭘 하든 사실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특히 요즘은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져서 내가 잠이 들고 나서야 집에 왔다. 엄마는 일을 관뒀다고 한 것 같았는데도 뭘 하는지 나가느라 바쁘다. 맨날 초등학생에게 오천 원짜리를 쥐어주면서 맛있는 걸 사 먹으란다.
나는 엄마가 준 돈으로 맛있는 과자를 사서 상가 동물원 아줌마랑 나눠 먹는다. 그날은 동네 빵집에서 새로운 크림빵을 파는 날이었다. 지나다니며 빵집 앞에 붙은 선전을 잘 봐두었다. 크림빵을 두 개 사서 가게로 갔다.
“아줌마, 윤후 왔어요.”
비닐봉지를 바스락대며 앞뒤로 흔들어댔다. 가게 안쪽에서 동그란 얼굴이 빼꼼 나왔다.
“어 왔어? 윤후야 이리 와봐.”
안쪽은 밖에 진열되지 않은 물고기들과 동물들이 있었다. 팔려고 준비하는 동물들을 모아 놓고 관리하는 곳이었다. 나도 가끔 동물들 먹이를 주거나 청소를 도왔다.
아줌마는 숨겨둔 비밀이라도 알려주겠다는 듯이 손짓을 해댔다. 자그마한 수조였다. 처음 보는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반짝 거리는 등이 보석처럼 빛났다. 수조에 달라붙어 뚫고 들어갈 것처럼 들여다보았다.
“선물.”
갑자기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화들짝 놀랐다. 초승달눈이 된 아줌마가 작고 동그란 수조 너머로 이상하게 보였다.
“사파이어 메다카. 이쁘지? 우리 윤후 가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