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던 날의 인생 첫 도전

오후부터 눈이 온다더니 7시가 넘어도 해가 뜨는 둥 마는 둥 밖이 어둑어둑했다. 이불속에서 잠시 눈을 뜨고는 커튼 밑을 살폈는데 아직 어둑한 느낌에 아직 새벽인가 싶어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첫째의 배고프다는 소리에 입으로만 알았다고 대답하고 조금만 더 잘 핑계를 생각하고 있는데 틀어놓은 텔레비전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7시 반이 다 돼가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커튼을 젖히자 회색 구름이 온 하늘에 가득해서 밖이 어둑어둑했다. 난방을 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소소 소름이 돋아 내뱉는 숨에 하얀 김이 서린다. 코가 시려서 감각이 없는데 자꾸만 뭐가 흐르는 것 같아서 시도 때도 없이 훌쩍거린다.


“혼자서 끝까지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때 난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서 흘러내린 콧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얼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이렇게 소리 질렀다. 나도 모르게 낑낑거리느라 담배를 뻑뻑 피는 사람처럼 연신 하얀 김이 뭉게뭉게 일었다.


10년도 더 전이었다. 매일 막차 시간이 다 되도록 컴퓨터를 붙잡고 키보드를 두드려대는데도 재미있다면서 회사를 다녔다.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분위기여서 그랬나 보다. 어느 날, 같은 팀 동료로부터 함께 스노보드 타러 스키장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들었다. 스키장 근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터라 망설였지만 이것도 도전이지 어쩌고 하면서 승낙했다. 알고 보니 매년 겨울이면 스키장에 간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팀을 꾸렸는데 몇 명이 부족해서 급 여기저기 갈 사람을 모집했던 것이었다. 단체로 가야 할인을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그 소리를 들으니 못 타는 사람 챙겨나 줄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초보자가 나를 포함해서 3명이나 있었다.


하필 휴가를 내고 쉬는 날이 스키장 가는 날로 정해져서 쉬는 둥 마는 둥 시계만 붙잡고 있다가 집합 장소인 회사로 갔다. 일을 끝내고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한 뒤 잠을 조금 자고 다음날 아침일찍부터 타고 놀다가 집으로 간다는 계획이었다. 1분 1초도 아깝게 허비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드디어 목적지로 출발! 어두운 밤에 출발한 것도 신경 쓰이는데 도중에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더니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체인을 감은 타이어가 내는 소리가 멀리서 텅텅텅텅 울리는 걸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흔들어대는 손에 눈을 떠보니 스키장 근처에 도착해있었다.


옷과 장비를 미리 준비해야 된다는 말에 스노보드와 옷과 장갑 등을 빌리고 작은 방이 늘어져 있는 오두막 같은 곳에서 잠을 청했다. 긴장이 돼서 그런지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흥분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날름 일어나서 차비를 했다. 들어보니 이미 몇몇은 스키장에 가 있다고 했다. 속으로 ‘역시 초보자 따윈 부록으로 데리고 온 거였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놀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히 같이 가자고 했던 동료가 타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초보자 3명은 옹기종기 눈 밭 한쪽에 모여 스노보드를 장착하는 법, 넘어지는 법, 타는 법 등을 대충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초보자 코스에서 어설픈 자세로 중심을 잡으며 내려오는데 두 발이 묶여 있으니 왜 이리 균형 잡기가 힘들던지. 연습하느라 입을 꾹 다물고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우리를 보더니 가르쳐주던 동료는 상급자 코스가 재미있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기 시작했다. 놀리는 건가 싶었다. 말인즉슨, 상급자 코스라고 이름이 붙어 있어 어려워 보이는 거지 사실 길이가 길뿐 타는 건 어렵지 않단다. 잘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일말의 의심 없이 초보 3명은 상급자 코스로 향하는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그때 가르쳐주던 동료를 혼자 보내고 눈 쌓인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온다는데 의의를 두고 초보자 코스에서 놀았어야 하는 건데. ‘진짜 재밌다’는 말을 듣고 왜 혹 했을까. 중심을 잡는다고 양손을 날갯짓하듯 허우적대며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잘 탄다고 하는 동료의 말을 왜 그대로 믿었던 걸까.


상급자 코스는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다들 신나서 우~ 뭐 이런 탄성을 지르며 내려가는데 추워서 그런 건지 밑이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작게 보여서 그런 건지 다리가 후들거려서 바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큰 ‘갈지’ 자를 그리면서 느릿느릿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 타는 동료가 옆에서 같이 내려가 줬다. 그런데 넘어졌다 일어나길 반복하던 중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먼저 간다는 말을 들었던가?


휘몰아치는 바람이 귀를 막아서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다. 모자를 꾹 눌러써서 그런 걸 지도 몰랐다. 언덕을 겨우 내려가자 평평한 코스가 시작되었는데 미끄러져 나가질 않아서 한쪽 다리를 보드에서 빼 내서 내내 걷듯이 탔던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한 건지 언덕길인 것 마냥 쌩쌩 나를 지나쳐갔다. 점점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내 발에 달려있는 스노보드가 천근만근 느껴져서 딱 떼서 한쪽에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하지만 비슷한 속도로 옆에서 낑낑 거리는 다른 두 명의 동료들이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다독거리며 열심히 걷다가 눈 위를 미끄러지다가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끌벅적하던 주변의 소리가 하나 둘 조용해졌다. 처음엔 동료들과 다독이느라 큰 소리로 힘내라고 외쳐댔는데 이제는 평소에 말하듯이 말해도 다 들렸다. 쌩쌩 달리는 사람도 없고 하얗던 눈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점심도 안 먹었는데 해가 지고 있었다.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콧물이 계속 나왔다. 어쨌든 끝까지 가보자 싶어서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뒤가 시끄러워지더니 스노모빌을 탄 사람들이 다가왔다. 스키장 영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 뒤쳐진 사람들을 태우고 코스 밖으로 가는 중이었다. 발갛던 눈은 이제 캄캄해진 탓에 켜진 조명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뒤처진 몇몇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스노모빌의 장정들은 씩씩거리며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는 우리를 보고 타고 가라며 탈것을 손짓했다. 그때 난 “혼자서 끝까지 내려가고 싶습니다.”라고 백! 소리를 질렀다. 코를 타고 흘러내려 입까지 가 닿았던 콧물도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아서 억지로 말하느라 튀던 침들도 조명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 않았을까.


얼른 가라는 듯 뒤에서 부릉부릉 대는 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스노모빌을 훈장처럼 달고 우리는 코스의 마지막 언덕에 도착했다.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가 주리라 마음먹고 스노보드에 체중을 싣고 밸런스를 잡으며 아래쪽에 보이는 불빛을 향했다. 하루 온종일 씩씩대며 눈 위에서 움직댔던 탓에 몸이 얼어붙었는지 막대기처럼 느껴졌다. 거의 다 도착해서 중심을 잡는다고 다리를 구부린다는 게 그만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샤악~ 하는 눈 가르는 소리와 함께 멋지게 끝을 내려했었지만 쿵~ 하는 깊은 울림이 있는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끝까지 혼자서 타고 내려온 게 어딘가. 우리가 코스를 벗어남과 동시에 스키장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리며 저녁까지 먹은 동료들과 함께 엉망진창인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다들 재미있었다며 하하 호호 이야기하는 데 입을 꾹 다물고 휙휙 지나가는 바깥 풍경만 내다보았다. 내일 또 타면 잘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돌아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멀어지는 스키장을 보며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아주 멋지게 탈 거라고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고생 많이 했다며 초보면서 그렇게 끝까지 내려오는 사람 없는데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는 동료들 이야기를 들으며 “맞아. 인생 첫 도전인데. 이만하면 성공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배고픔과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아 근육통을 경감시켜준다는 프로테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난생처음 탄 스노보드로 상급자 코스까지 끝내고 마시는 프로테인의 맛은 밍밍할 거라며 전해준 동료의 말과는 달리 꿀맛 같았다.


“크으! 꿀맛이구먼!"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에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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