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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를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이유

부부싸움에서 중요한 것. 감정의 불순물을 빨리 없애는 것

by 프니

그릇에 붙어버린 카레 양념을 벗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될 리가 있는가, 이미 끈끈하게 붙어버린 하루 지난 카레 양념이었다. 수세미로 박박 닦다가, 손톱으로 긁다가, 다시 박박 닦기를 몇 번째. 드디어 누리끼리했던 그릇의 색이 다시 본연의 색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가장 싫어하는 음식(카레)의 잔해물들이 묻은 그릇을 닦았던 날, 이건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에 카레를 먹는다면 곧바로 설거지를 하기로.

출처:pixabay

우리 집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그중 설거지는 남편 영역. 카레를 먹은 다음날 남편이 야근을 했다. 그래서, 내가 설거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괜히 심통이 났다. 내가 왜 지금 설거지를 해야 하는가?로 시작된 물음은 접시가 하얘질 때까지 계속됐다. 12시에, 방긋 웃으며 도착한 남편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짜증 났던 감정이 사르르 풀렸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더니 또 기분이 오묘했다.


"아, 이 감정 뭐지? 아 뭔가 찝찝하고 그런데..?"

노곤노곤 코를 골며 자는 남편 옆에 누워 말똥말똥 눈을 껌뻑였다. 오늘 안에 이 찝찝한 감정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내일의 내가 고통받을 걸 알기에 무조건 정답을 찾아보려 애썼다. 배게도 쳐보고, 이불도 차보고, 그렇다고, 잠자는 남편을 깨워 물어볼 수 도 없는 일이기에, 지난 카톡대화를 보면서 우리의 일주일을 역추적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드디어 그 원인을 알아냈다.


며칠 전, 남편과의 대화 도중 마음이 상했던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 그때는 참 서운했다. 말로는 부부는 하나라고 외치면서, 내게 중요한 집안일(시가 관련)을 뒤늦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내게도 이것저것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빨리 말해주지 않는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날만 그랬던 게 아니고, 연애를 할 때도 저랬다. 하하. 물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남편에게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또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며 허허 웃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고,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는 끝이났다.


그렇게 끝나버린 대화처럼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남아있던 감정이 아직도 마음속에 달라붙어 남아있던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 더 눌러버린 그 카레 그릇처럼. 그 불순물처럼 남아있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그 감정이 설거지를 하던 날 불쑥 튀어 나왔다.감정을 남겨두면, 갑자기 나온다는 게 문제다.



신혼초에는 이렇게 남편과 서운한 일,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엄마한테는 걱정할까 봐 못하겠고, 친한 친구에게도 누워서 침 뱉기 같아서 못하겠고, 언니한테 말하면 엄마한테 말할 것 같고, 인터넷에 글 올리는 건 또 무섭고, 음 그러니까 어디에다 내 마음을 말해야 하나 새로운 고민이 생긴 셈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잔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진 대상은 엄마도, 친구도 아닌 남편이라는 사실. 남편과 화끈하게 파이트를 떠야 하는 것을 모르고, 엄한 사람을 찾고 있던 것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기혼 친구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귀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편과 해결해야 된다는 사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날의 감정은 그날 해소하는 것.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왜 나한테 늦게 말해줬어! 열 받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한테 늦게 말해주면 나는 이러저러해서 더 피곤해지고, 힘들다는 상황을 말해주고, 이게 풀린 건지, 아닌 거지 애매하고 미지근한 화해가 아니라, 뜨겁디뜨거운 화해의 포옹을 하는 걸로. 그날 먹은 짜증은, 그날 꼭꼭 씹어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눌어붙은 카레 그릇을 설거지했던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설거지를 미루지 말고 살자고 약속했다. 그게 그릇이든, 우리의 감정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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