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1년을 살아버렸다니,대박이다
스테이크를 자르기 전, 우리는 딸기에이드와 레몬에이드 잔을 들어 부딪혔다. 무거운 잔의 건배는 "탁"한 소리가 났다. 드라마 속에서 나오던 얇고 근사한 소리가 아니라, 뭉툭하고 탁한 소리에 실로 웃음이 나와 풉 하고 터져버렸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지난 1년도 티브이 속 드라마 같지 않았다. 레몬에이드를 한입 먹고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남편에게 축하 멘트를 건넸다.
"와, 우리가 1년을 살아버렸네, 대박이다 대박이야."
"그러니까, 대박"
"그런데, 여보는 우리가 언제부터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
남편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같이 손잡고 경조사에 다닐 때가 그랬다는 싱거운 답이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라는 말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유도했지만, 남편은 그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할 뿐이었다. 아, 감동적인 멘트가 나올 줄 알았는데 별거 없다고 하니, 나의 대답이 궁금해진 남편은 몸을 내쪽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나의 그때는 언제였냐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딱 어느 순간이라고 지칭할 수는 없었다. 초반에는(삼 개월 정도) 결혼을 한 건지, 내가 남자 친구랑 놀러 온 건지 분간이 잘 안 갔다. 우리의 지난 1년, 몇 번의 고성과 분노가 오가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사랑이 문밖으로 흘러 넘 칠 만큼 과한 적도 있었다. 자는 남편의 모습이 신생아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뜬금없이 환희의 눈물이 터지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그 모습이 얄미워서 자고 있는 남편을 침대 끝으로 밀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결혼생활을 떠올려보니 꼭 시소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서로가 던진 감정에 기분이 올라갔다가도, 다시 또 바닥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그렇게 지난 1년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내가 정말 남편과 결혼을 했구나, 이게 가족이구나를 뜨겁게 느꼈던 순간순간들이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졌다. 가장 최초의 기억은, 백수가 된 후의 어느 날이었다. 늘 새벽에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잠결에 볼 때마다 편히 다시 잘 수 있음에 감사하다가도, 미안함이 들었다. 하필이면, 그때 남편의 직장은 최고로 바빠져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나는 하루 온종일 혼자 집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어야 했다. 남편이 잘못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 일.
그런데 언젠가부터 16층에 사는 나는, 꼭 지하 1층 주차장에 마음을 가져다 두며 살았다. 한층, 한층 마음의 층수가 내려갈 때마다 우울의 감정은 나를 집어삼켰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남편이 오면 곧 밝은 티를 내며 남편을 맞았고, 남편이 사라지면 다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삶의 반복.
어느 날이었다. 퇴근을 한 남편은 닭강정을 들고 들어왔다. 맛있게 야식을 먹으며 놀 생각이었던 남편을 보자마자, 남편의 손에 들려있는 닭강정 봉지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슬펐다. 생각해보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생각에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결혼 후, 처음 남편에게 눈물을 보였던 날.
남편과 한층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등을 토닥거리는 그 손길이 또 너무 따스해서, 눈물이 또 왈칵 나버렸다. 닭강정이 식어갈 때까지 실컷 울고, 남편과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며 또 엄청난 위로를 받고, 울었던 그날.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속에 엉켜있던 감정들을 남편에게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토닥거리는 남편의 손길에서, 안아주었던 그 따스한 품속에서 선명한 그림자를 봤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그 뜨거운 위로를 받으며 다짐했다. 상대방이 오늘의 나처럼, 무너지는 순간에는 내가 든든한 위로를 떠먹여 주겠다고.
사실, 엄마 집에 살 때도 가끔은 울었는데, 몰래 울었다.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면서, 가끔은 물만 틀어놓고 변기에 앉아 그렇게 몰래 울었다. 부모님에게 다 큰 자식의 눈물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가족이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았던 것이다. 보여주면 안 될 나의 모습과, 보여주기 꺼려지는 내 모습들을 숨겨가면서. 문득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우자는 부모님이 줄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날은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날이었다.
남편의 따뜻한 위로 덕에,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울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일상으로 변했다. 더이상 내 마음을 지하주차장에 내려두지 않는다. 5월에 심었던 토마토는, 어느새 빨갛게 변해버렸다. 태양은 언제나 떠올랐고, 강은 흘렀고, 살아가는 공기도 언제나 가득했다. 지난 1년, 우리는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의 1년이 흘러갔다. 우리의 내년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시간은 어디로 어떻게 흐르게 될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미래의 모습을 확실하게 그릴 순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알 것 같다.
걸어가며 방귀를 뀌는 남편을 보며 더 이상 놀라지 아니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씻지 않는 나를 남편도 더 이상 신기하게 보지 않으며, 새벽마다 몸을 벌떡 일으켜 거실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깜짝깜짝 놀라던 순간의 장면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가족이 돼버린 우리. 서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던 지난 1년이, 앞으로 우리가 부딪히며 살아가야 할 많은 시간들의 선행학습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진하디 진한 청국장을 끓여 먹고, 달달한 작은 케이크에 초를 불며 소원을 빌었다. 드라마틱하지 않았던 우리의 1년, 앞으로의 시간도 시청률 높은 드라마 대신 인간극장 같은 소소한 하루로 가득 차지 길 바란다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1년을 기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