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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꿈을 꾸는 여자, 꿈을 듣는 남자

침대 위의 동상이몽

by 프니

오랜만에 어머님을 만나 밥 한 술 뜨려던 참이었다.

"프리야, 남편이 말 안 들으면 아주 줘 패 버려"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눈빛을 보니 진심이었다. "역시 어머님은 저의 편이시군요." 그리고 속으로 대답했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어제도 때렸는걸요. 꿈에서.)


나는 일주일에 5일 이상 꿈을 꾼다. 그 꿈은 정말 다양하고 디테일해서 때로는 일어나자마자 메모장에 스토리를 기록한다. 소설을 쓰지 않지만, 언젠가는 써보면 대박 날 것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예를 들자면, 집안으로 포클레인이 들어와서 온 동네 주민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는 꿈이라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숨겨두신 선물을 발견하는 꿈이라던가,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는 꿈이라던가, 꿈에서 언니가 남편에게 잘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꿈이라던가, 남편과 술집에 가서 술을 진탕 먹고 취해버린 꿈이라던가 등등. 일어나지 않을 일들만 골라잡아서 꿈을 꾼다. 아, 이래서 꿈은 꿈이라고 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아침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보통 이런 식으로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보냈다. 가끔 너무 잔인한 꿈이 현실적으로 나오는 날이면, 전화를 하기도 한다. "그건 꿈이야, 괜찮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지. 이건 꿈이었어. 금세 안정을 되찾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이 달라졌다. 남편이 감옥에 가서 면회를 갔던 꿈을 꾼 그날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여보 슈(애칭, 여보라고 하기는 부끄러워서 +슈를 붙였다)가 꿈에서 감옥에 갔다고 했더니 남편은 곧장 다른 말을(택배) 했다. 이건 분명 회피였다. 곧장 전화를 해서 감옥 썰이 궁금하지 않냐 하니, 킥킥 웃으며 집에서 들어보겠다고 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그의 감옥 썰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와 진짜 이걸 맨날 꾸는 것도 신기한데, 어떻게 맨날 그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 거야? 신기하게도 남편은 꿈을 꾼 적이 손에 꼽힌다고 했다. 난 그게 더 신기하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꿈을 안 꿀 수가 있지, 배게에 머리를 대자마자 신나게 잠드는 남편이 부러워서 질투까지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꿈이야기는 적당히 해야겠노라고.



한번은 꿈에서 내가 바람이 난 적이 있었다. 며칠내내 남편이 나를 약올리던 그때쯤이었다. 꿈에서도 겁장이였던 나는, 다른 사내와 연락을 하며 남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불쑥 내앞에 튀어나와 내 손을 잡길래, 나는 남편의 등짝을 짝짝 두대정도 때리고 도망쳤다. 정말 개꿈이었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나니, 나도 모르게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산뜻한 아침이었다.


그러고보니, 침대위의 동상이몽이 바로 우리였다. 365일 중 5일정도 꿈을 꾸는 남편과, 주5일 꿈을 꾸는 아내의 침대위의 일들. 잔인하고 괴상한 꿈을 꾸어도, 남편의 "괜찮아"한마디에 사르르 불안한 마음이 중화되버리는 부부의 합. 한번은 항상 토요일밤, 평소보다 무시무시한 꿈을 꾸는 내게 남편이 진단을 내려준 적이 있다. <그것이알고싶다> 매니아였던 나는, 그알을 보고 잠에 들면 무조건 악몽을 꾼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나는 그알만은 포기 못해라고 선을 그었지만, 남편은 손을 잡고 정말 간절히 부탁했다. "그럼 딱 2주만 보지 말아봐"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그알 대신 전참시를 봤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토요일밤의 악몽에서 해방 됐다.


항상 이쁜 꿈만 꾸라며 다독여주는 남편이 참 고맙고 좋다. 하지만, 언제고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어찌나 얄미운지 잠든 남편의 엉덩이를 툭툭 친 적도 있지만, 아픔은 오로지 내 주먹뿐. 곤히 잠든 남편은 일말의 미동도 없으니까 내 약만 오를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스러운 남편을 때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나를 열 받게 한다거나, 다투는 날이 오면 곤히 잠든 남편 옆에 누워 조용히 손을 모아 기도 한다. 마치 때를 기다리는 전사처럼, 아주 결연하게.

"주님, 오늘은 남편을 때리는 꿈을 꾸게 해 주세요" 하고 말이다.




<+저는 남편을 때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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