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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둘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일

신혼집에서 과자집을 만들다 일어난 일

by 프니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청국장을 이틀 내내 먹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었다. 남편은 8시, 나는 10시에 일어났고, 약 11시경 거실에서 조우했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또다시 청국장으로 배를 채웠다. 밥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다가, 갑자기 와플을 먹었고, 또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 암막커튼까지 쳐버려서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소리쳤다.


"으아악 이렇게 내 주말이 갈 순 없어."

주말을 허비하는 것에 아직도 서툰 남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재미있게 해 줄까?"

꿈에 그리던 과자집

무언가를 기대하듯 팔을 파닥파닥 거렸던 남편은 내 한마디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버렸다. 나의 기막힌 제안은 과자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얼마나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즐거운 과정일까 상상해 보라 하여도 남편의 처진 입꼬리는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남편은 부스러기를 싫어해서 과자 먹을 때도 한입에 털어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에,내 제안이 썩 마음 내키지는 않은 듯 했다.



"자기가 안 해봐서 그래"

"자기야, 자기가 안 해봐서 그래. 이런 거 같이 만드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내가 후회 안 하게 해 줄게."라는 달콤한 한마디에 남편은 부엌으로 걸어가 과자들을 선별해왔다. 유통기한이 지난 과자들이었다. (과자도 대량으로 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음) 인터넷에 찾아보니 물엿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물엿 대신 올리고당이 있었다. 남편은 올리고당은 안 될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그만하자 했지만, 나는 대충 비슷하니까 그냥 하자고 했다. 그때 남편 말을 들었어야 했다.



시작은 허접할지라도

우리의 과자집은 시작부터 허접했다. 언제 부스러질지 모르는 롤리폴리로 벽면을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 지붕을 어떤 식으로 올릴지에 대해 5분을 소비했다. 지붕으로 쓸만한 평평한 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조그마한 비스킷을 대충 올려보자라고 하는 나와, 그럴 순 없다는 남편의 대치상황. 일단, 시작하면 대충 하지 않으려는 남편과, 대충이라도 재미를 위해 하고 싶은 나의 충돌이 일어난 시점이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꽤나 억울한 표정으로 본인은 이런 허접한 고인돌을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는데, 남편의 뜬금없는 고인돌 발언에 난데없이 배꼽을 잡고 뒹굴며 웃었다.


"아 고인돌이래, 아 고인돌이래. 아"

그렇게 오래도록 웃고 일어나 곧 고인돌이 될 운명을 가진 과자집을 본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자집은 처참하게 쓰러져있었다. 올리고당으로 힘들게 붙여놓은 롤리폴리 벽은 지붕을 올리려던 남편의 투박한 손에 의해 한순간에 몰락 한 것이었다. 나는 당장 남편의 멱살을 잡고 지금 장난하냐고 물었고, 남편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기는 결백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게 어차피 올리고당이라 잘 안 붙어요. 다음 주에 진짜 과자집을 만들어보자" 하고 웃음을 날리는 남편은 지금껏 살면서 봐온 것 중 가장 해맑은 얼굴이었다.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그 웃음보다 더 행복해보였다. 그래서 더 열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과자를 내리찍은 후, 손등에 달라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남편 볼에 마구마구 비비고 싶었지만 참았다. 참아야 했다. 다음 주에 다시 과자집을 만들어야 하니까. 하하



결혼식에는 로망이 없었지만, 결혼생활에는 로망이 있었다. 좋아하는 카페의 분위기를 집에서도 느끼고 싶었고, 365일 매일 크리스마스인 듯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를 켜 놓고 싶었는데 무엇보다 남편과 하루 종일 깔깔 대는 하루를 꿈꾸었다. 로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시도해봤다.


그 수많은 시도 속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 결혼생활이란 둘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런데, 평일에는 7시 30분쯤 귀가하는 남편과 저녁을 먹고, 조금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라 많은 것을 할 수는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며칠 내내 붙어 있어야 하는 명절이나 주말은 또 다르다. 같이 하루 종일 있기만 해도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좋은 건 좋은 거고 심심한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하루 종일 할 게 없어서 가로세로 게임부터 시작해서, 카트라이더, 숨은 그림 찾기 게임을 같이 했다. 남편이 주말마다 하는 롤이라는 게임을 같이 할 수 없으니 단순한 게임들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 명은 데스크톱으로, 한 명은 노트북으로 한집에서 게임으로 만나니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5월에는 함께 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했다. 잘 자라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지지대를 받쳐주고, 물을 주기적으로 주면서 토마토를 함께 지켜나갔다. 가끔은 좁은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인생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별일을 하지는 않지만, 작은 것도 함께 하니 재미는 배가 되었다.


그러니까 접착력 없는 올리고당으로 과자집을 만들려는 무모한 짓을 하면서도 우리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하는 것 자체로 좋았기 때문 아닐까. 비록 과자로 고인돌조차 만들지 못했지만, 한바탕 깔깔 웃을 수 있어 나쁘지 않았던 날.


드디어 길었던 주말의 밤이 찾아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정말 다음 주에 과자집을 만들 거냐 물었다. 남편은 등을 돌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남편에게 당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목소리를 깔고 차분히 말했다.


"과자집 안 만들 거면 집에서 과자 먹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까보다 더 요란하게 남편의 어깨가 흔들렸다. 얄궂게 흔들리는 어깨를 돌리려는데 손에 힘이 풀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의 어깨는 오래 흔들렸고, 우리는 오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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