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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양말이 문제일까, 우리가 문제일까

살면 살수록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신혼

by 프니

신혼집에 들어와서 가장 설렜던 일은, 우리가 이 집에서 함께 신을 양말, 함께 닦을 수건, 함께 라면을 끓여먹을 냄비 등을 사재기하는 일이었다. 초반에는 도어록 번호가 그렇게 외워지지 않더니, 이제는 눈감고도 능숙하게 집에 들어온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을까, 우리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양말이 문제일까, 우리가 문제일까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으로, 양말을 신을 일이 별로 없다. 아주 가끔 친정에 간다던가, 집 앞 슈퍼에 갈 때면 모를까. (요즘은 집안에 냉기가 돌아 수면양말을 신기는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남편은 매일 양말을 신는다. 실제로, 빨래의 80%는 남편 몫일만큼 나는 지겹게도 밖을 안 나가는 사람인 것이다.


신혼 초반에는 양말도 귀여운 거 신고 싶어서, 스누피 양말, 각종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빵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남편이 가끔 내 귀여운 양말을 신고 있던 거였다. 그러다 우연히, 똑같은 색깔의 양말을 세트로 구매하면 정리할 때 쉽고 편하다는 생활 꿀팁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남편의 발목양말은 무조건 하얀색, 기다란 양말은 회색으로 구비를 해두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일이 빨리 끝나, 남편을 기다리며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런데, 양말의 짝이 안 맞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세 개나. 나는 이 사건의 범인은 남편이라고 단정 지었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남편이 의심되는 이유

1) 내가 신은 양말 2개는 짝이 잘 맞혀져 있다.

2) 짝이 안 맞는 양말은 모두 남편의 것이다.

바로 남편에게 카톡을 날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바로 물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ㅋㅋㅋㅋㅋㅋ웃더니 그럴 리가 없다며 집에 와서 해명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아주 오래오래 양말 사건을 이야기했지만, 밝혀진 사실은 하나도 없이 끝이 났다. 남편의 변은 이랬다. 본인은 항상 양말을 벗자마자 바로 세탁기에 놓는 스타일인데, 없어졌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추측해보자면,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빨래를 옮길 때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를 의심한다는 말. 나는 공격을 받자마자 박장대소했지만, 속으로는 설마 내가 그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적이 한번 있긴 있었으니까. 하지만, 건조기에도 세탁기에도 바닥에도 남아있지 않은 양말 사건은 여전히 우리 집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또다시 양말 논란에 휩싸이다.

정말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지, 거의 세 달 뒤에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몇 주 전, 급하게 친정에 갈 일이 생겨 남편의 바람막이를 입고 집에 나섰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남편이 나 입으라고 꺼내놓은 바람막이를 입으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뭉클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 핸드폰을 꺼내 남편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남겨야겠다 싶던 차였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내 손에는 딱딱한 핸드폰과 이상한 물체가 만져졌다.


아뿔싸. 이것은 양말이었다. 양말이 여기 왜 있는 걸까. 이건 무슨 상황일까. 남편이 나 손 시리지 말라고 넣어둔 지나친 배려가 아닐까 싶어 당장 카톡을 보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이번에도 역시나 자기도 모른단다. 역시, 집에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남편을 놀렸다. 주머니마다 양말을 하나씩 구비해두는 철두철미한 젊은 이인 줄 미처 몰랐다고. 남편은 말없이 내 말을 받아주며 머리를 긁었다. 본인도 도대체 왜 그곳에 그것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같이 산지 일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없어지고, 빵구난 양말들을 생각하니 괜히 미안하다. 나는 이 사태가 남편의 잘못이라 생각하지만 남편은, 항상 세탁기에 양말을 대충 던져버리는 나를 의심한다. 적과의 동침인 것인가. 이래나저래나, 이 집에 사는 건 우리 둘 뿐이니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어쨌든, 그렇게 분실되었던 양말 한쪽을 찾았다. 우리 집구석, 어딘가에서 간절히 구조를 바라고 있을 양말 생각에 심오해지는 금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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