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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3,800원 애호박도 먹은 사이

신혼 밥상 필수템, 애호박이면 됩니다.

by 프니

기혼이 되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체감할 때가 바로 마트에 갔을 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언젠가부터 애호박 가격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날도 그랬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는 990원이었는데, 옆동네 이마트에는 1,180원이다. 고로, 나는 이 어려운 시기에 190원을 절약한 알뜰살뜰 이가 되었음에 스스로 감탄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식재료값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 모습이 낯설지만 나쁘지 않다.


된장찌개 맛의 8할은 두부도 아니고, 감자도 아니고 애호박이다. 비단 두부찌개뿐인가. 총총총 잘라서 계란물에 묻혀서 기름과 만나면 손쉽게 호박전이 완성되고, 애호박을 기다랗게 잘라 들기름에 볶아서는 고추장과 함께 밥을 비벼 먹으면 이 맛 또한, 애호박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애호박이 좋다. 대충 아무렇게나 올려놓아도 뭔들 안 어울리는 곳이 없다. 대단한 친화력이다.


지난여름, 990원 하던 애호박의 몸값이 4배나 올라 4천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가 된 적이 있다. 눈물겨운 애호박을 먹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애호박이 건네는 그 깊고 진한 달콤함의 풍미를 알기에 사 먹기는 했지만, 너무너무 비싸서 너무너무 아껴먹었던 그 날의 우리가 떠오른다.

이제 곧 1년, 우리는 벌써 수많은 애호박을 먹었고, 게다가 3800원짜리 애호박을 먹어본 사이가 됐다. 그날도 그랬다. 맛있게 밥을 먹고, 바로 치우지 않는 편인 남편을 바라보며, 그런 남편보다 더 늦게 치우는 편인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내가 정말 여보랑 살면서 얼~~ 마나 많은 걸 참는지 알면 깜~~ 짝 놀랄 거다."

남편이 말했다.

"여보, 여보도 정말 모를 거다. 얼마~~~~~~나"

"그만!"


그렇게 우리는 고통분담 5:5원칙을 지켜내 가며 잘 살아내고 있다. "이게 다 애호박 덕분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과언이 아닌 게, 우리는 참 자주, 툭하면 애호박을 먹었다. 깨소금 대신 애호박냄새가 진동하는 우리집. 앞으로, 평생 990원으로 애호박을 먹을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 "아니 글쎄, 그때는 애호박이 990원밖에 안 했지, 뭐야" 하게 될 시절에도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달달한 애호박을 고르고 있기를, 둥근달을 보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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