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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날아온 뜨끈뜨끈한 호떡

올해는 꼭 호떡을 돌려야지

by 프니

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다. 동네가 한적하고, 공원도 있고, 지하철역도 가깝고, 아, 소방서도 집 앞에 있다. 사실 조금 더 개인적인 이유를 대보자면, 월요일에는 회 트럭이 오고, 화요일에는 만두 트럭, 수요일에는 무려 장이 열리고, 금요일에는 호떡, 토요일에는 아바이순대 트럭이 오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기다리는 맛이 분명 있다.


그날의 나는 일을 하다 말고 슬리퍼를 신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금요일이었다. 슬리퍼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침투해, 발가락을 비비 꼬이게 만들었지만 저기 저 앞에 보이는 호떡집이 보이니 추운 것도 몰랐다. 이것이 호세권, 우리 아파트의 복지였다. 3천 원어치의 호떡을 주문했다. 4개에 3천 원, 3천 원에 4개. 사 먹지 않으면 유죄인 가격.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는 내 용돈 계좌에서 입금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통장잔고에는 3,400원의 금액이 있었다. 3,000원을 호떡과 맞바꾸면 내 계좌에는 400원만 남는다. 나는 이조차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뜨거운 호떡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인스타에 글을 올렸다. 호떡 먹기 참 좋은 날이라고.


집으로 돌아와 곧장 호떡 하나를 집어 입안으로 넣었다. 아직도 뜨끈뜨끈, 쫀득쫀득한 것이 미칠 노릇이었다. 하나를 더 먹을까 하다가, 이따 남편이 오면 같이 또 먹어야지 하고는 다시 컴퓨터 의자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입술에 굳어버린 꿀 양념을 쩝쩝 다시며 정신없이 일을 할 때였다. 띵 하고 카톡음이 울렸다.

올 초, 코로나가 터지기 전 미국으로 떠난 친한 언니의 카톡이었다. 미국은 분명 새벽일 텐데, 갑자기 카톡을 보냈기에 놀랐는데, 그보다 놀라운 것은 6,000원이라는 금액을 받으세요!라는 라이언의 모습이었다. 아니 언니 이게 뭐야!!! 언니는 인스타를 보고 연락을 한 거였다. 말 안 해도 그거였다. 호떡을 사 먹고 300원이 남았다는 말을 듣고 언니는 곧장 호떡 8개 사 먹을 수 있는 6,000원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언니는 늘 그랬다. 우리 커플의 100일 날에는 배스킨라빈스 기프티콘을 보내주었고, 내 생일에는 등산가방에 온갖 파티용품을 들고 와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해 주었던, 그런 언니였다. 늘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언니의 마음을 알기에 고마우면서도 또 미안했다. 그래서 받기 버튼을 누르지 않으려 애쓰다, 결국 또 눌러버렸다. 그렇게 나는 총 8개의 호떡을 선물 받았다. 그것도 저 머나먼 땅 미국에서.


<받기> 버튼을 누르니, 카카오페이 금액에 6천 원이 찍혔다. 참 빠르고 쉽게 내 계좌에 돈이 생겼다. 그동안 나 혼자 살기 바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닌지, 거리의 문제야,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하니까 그렇지.라고 애써 포장했던 마음이 참 변명 같아서, 내가 참 못나보였다.


사실 나는 애초에 그런 인간이다. 주기보다 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 받는 게 주는 것보다 더 마음 편한 사람. 그리고, 나는 연말이나 생일 때 몰아서 그 마음을 표현하는 스타일인데, 왜 평소의 고마운 감정을 바로 전달하지 못한 채 혼자 고이 간직하며 지냈는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주는 게 익숙지 않아서겠지.


생각해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백수 시절, 하루 종일 집구석에 혼자 있다 보니 답답해서, 사람 목소리 좀 들어보고 싶다는 피드를 올린 적이 있다. 물론 90% 과장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때로는 너무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날이 그날이었나 보다. 그 피드를 올린 후, 주기적으로 7시가 되면 전 직장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인스타 보고 마음이 쓰여서 전화를 했다는 말이었다. 너무 놀라웠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는데, 그 정신없는 퇴근길에 내게 전화를 걸어주다니. 이것 또한 미국에서 날아온 붕어빵만큼이나 뜨거운 마음이 전해졌다.


이제 12월이다. 가슴속에 현금 3천 원 정도는 품고 다녀야 할 겨울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한해의 아쉬움을 저마다의 모습으로 풀어내느라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유난히 힘들었던 올해를 묵묵하게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인들의 도움 덕이 아니었을까. 꼭 얼굴을 봐야지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게 아닌 것을 이제 확실히 안다. 그러니, 올해는 꼭 그들에게 따뜻한 붕어빵을 안겨주고 싶다. 미국에서 언니가 보내준 그 뜨거운 붕어빵의 온기를 가득가득 담아서. 올해는 꼭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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