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되기 전에 탈출한 음주 이야기
술 먹을래, 탈골될래 결정하라면 나는 단번에 후자를 택할 거다. 소주를 원샷하느니 격렬한 춤을 추다가 어깨가 탈골되어서 겁에 질린 채 응급실에 실려 가 깁스 한 달을 한대도 그 편이 나을 것 같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들과 술자리에 가게 되면 “사이다 시켜도 될까요?”라는 말로 알코올 쓰레기를 건들지 말라는 신호를 당당히 보낸다. 그럼에도 한 잔만 마셔보라고, 오늘 술이 달다며 소주를 권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송해요, 저 먹으면 토하고 쓰러져요”라는 말로 거부 의사를 밝히며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떡볶이를 먹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건전 루트를 개발한 지도 10여 년, 어느덧 옆에는 술을 먹지 못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평탄했던 건 아니다. 대학교 2학년, 종강 파티로 감자탕집에 가서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한 친구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진짜, 술만 먹으면 더 좋을 텐데, 너무 아쉬워.”
철판 위에 눌어붙은 볶음밥을 은수저로 긁어내다 마주한 친구의 고백에 순간 놀랐던 적도 있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술을 먹지 않는다. 선배가 술을 건네도 미간을 찌푸린 채 술을 먹지 않았다. 덕분에 대학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섞여 이야기를 할 기회는 많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음주 철벽이 강한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하지만 술을 예전부터 안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새내기 배움터에 가서는 생전 처음 본 사람이 건네는 술을 자연스럽게 입속으로 털었다. 몇 잔을 내리 먹고 나서 나는 온몸이 새빨개진 홍당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해서 온 대학인데 (예비번호 169번)라는 생각으로 술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술을 퍼붓고는 화장실에 달려가기도 했지만, 그때까지 나는 술을 그래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 믿었다.
문제의 그날은 1학년 1학기 종강 파티였다. 술집이 열지 않은 이른 시각, 롯데리아에 다닥다닥 앉아서 감자튀김을 나눠 먹으며 오늘의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싸게, 조금 더 오래 놀 수 있을까? 그 답은 번화가 골목에 자리 잡은 허름한 술집이었다. 날이 저물었고, 우리는 그 술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어 조용한 공기가 맴돌던 그곳에는 분홍색으로 덮인 소파의 스킨이 이리저리 헤져있었다. 반바지를 입은 탓에 맨살에 까슬함이 스쳐 손으로 박박 허벅지를 긁으며 메뉴를 골랐다.
곧이어 메뉴와 술이 준비됐다. 우선은 배가 덜 부를 소주를 먹자고 했다. 맥주는 금방 배부르고, 화장실에 자주 가게 만드는 고약한 놈이라고 했지만 사실 소주가 더 쌌기 때문이었다. 작년만 해도 교복을 입고 야자를 했을 시간에 술집에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짜릿한 자유를 충분히 느껴야 할 시간, 하지만 내 몸은 내 기분을 따라가지 못했다. 애피타이저로 먹은 감자튀김이 얹힌 건지, 오늘 술은 쓰고 또 썼다. 어릴 때, 콜라라고 속아 소화제를 내 입으로 털었던 그 기분 나쁜 쓴맛이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어야 하나 싶던 차 조용했던 술집은 이내 신명 나는 가락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
마주 앉은 친구의 술잔은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청중들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빛의 속도로 소주잔을 입으로 직행하자마자 크으으으 하고는 금세 입가에 미소를 띠는 그 친구가 마치 행위예술가 같았다. 타인이 맛있게 술 먹는 것을 기대하고 갈망하는 어린양들의 니즈를 채워주기 위해 맛깔스러운 연기로 소주의 맛을 표현하는 저 찬란하고 고귀한 에티튜드. 항상 소주를 먹고는 인상을 쓰며 헐레벌떡 부대찌개에 있는 햄을 혓바닥에 올려놓으며 하수의 짓을 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0살의 나는 그 친구를 보고 쓸데없는 자극을 받았다. 보통 술자리에서는 타깃이 정해지기 마련인데, 오늘의 주인공은 나였다. 게임에서 우스꽝스럽게 패배한 나는 연속으로 3잔을 받아먹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혀가 꼬였다. 그럼에도 자신감 없는 모습도 보이기 싫었던 나였기에 다시 게임에 출전했지만 또다시 패배! 정말이지 이 술을 먹으면 낮에 먹었던 감자튀김이 올라올 것 같았지만, 주변인들의 눈빛에 나는 결국 소주잔을 꺾었다. 나는 친구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3차로 간 노래방에서는 친구가 편의점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자마자 또 토를 했다. 노래방 바닥에 그려진 빨간 자국은 흡사 폭행 사건에 휘말린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과 같았다. 친구들은 내가 피를 토한 줄 알고 소리를 질렀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스크류바를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고 훗날 전했다. 애석하게도 친구의 분비물을 온정의 마음을 모아 치워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나는 겨우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 화장실에 올라가 또 한 번, 옆 건물 화장실에 또 한 번, 그렇게 나의 흔적을 남긴 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지옥 천당에 여러 번 넘나들었던 그날 나는 죽다 살아났다. 쓰레기차가 오기 직전까지 오랜 시간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분비물과의 사투를 벌인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을 거라고. 술에 취해 고통받느니 차라리 어깨가 탈골 되는 편이 나을 거라고 말이다. 입에는 침이, 코에는 콧물이, 눈에는 눈물이 흘렀던 엉망진창이었던 그날 이후로 나는 금욕주의자로 태어났다. 변기를 부여잡고 탈골 노래를 마지막으로 불렀던 2008년 어느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