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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알람, 맥모닝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맥모닝 먹는다!

by 프니

사람은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맥모닝을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 더 정확히 표현하면 맥모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맥모닝을 포기하는 사람. 나는 언제나 후자였다. 맥모닝? 고작 햄버거도 아니고 빵에 계란 들어간 걸 먹겠다고 아침잠을 포기한다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 하며 맥모닝보다 더 맛있는 아침잠을 택했다. 나는 마음이 약하고, 기력도 약하니까 그러니까 늦잠을 잘 수밖에 없는 몸이라 여기며 삼십 년 동안 맥모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라 재미있는 것. 나는 그날 7시 30분에 눈을 떴다. 알람을 10개나 맞췄는데, 첫 번째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고, 몸을 벌떡 일으켜 외출 준비를 했다.


"엄마, 나 나갔다 올게."

"아침부터 어디 가는 거야."

"도~서관~(가기 전에 맥도널드)"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할 게 별로 없어서 마음의 양식이라도 채우자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자주 갔었는데, 그날은 위장의 양식이 먼저였다. 맥도날드로 향했다. 사실 잠들기 전부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선덕선덕 한 것이 꼭 소풍 전날 밤 같았다. 내가 일어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고 잠에 들었던 나였는데 나는 나를 잘 몰랐나 보다. 초인적인 힘으로 10분 만에 준비하고 집을 뛰쳐나온 것을 보면.


맥도날드는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선착순 300개의 에그 맥머핀을 증정한다고 했다. 당시 동료 백수단이었던 친구와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시간도 많고, 돈도 없는 백수 아닌가! 일찍 일어나서 공짜 맥머핀을 먹을 수 있다니.


8시 도착.


우리는 맥도날드 앞에서 만났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맥도날드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해서 문 밖까지 줄이 이어졌다. 역시 세상은 만만찮았다. 8시 행사니까, 8시에 맞추어 온 나의 진부한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1분, 4분, 7분을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매장 안으로 입성했다. 작은 가게에는 주문을 받는 소리와 머핀을 구워내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리고 우리 교회 목사님들까지 그곳에 모두 모여있었다.


슬슬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30분이 다 됐는데 아직도 내 앞에 서른 명은 족히 서있었다. 부디 카운터에 도착했을 때, 손님, 오늘 맥머핀 증정 행사는 마감됐습니다. 돈을 내시겠어요?라고 할까 봐 초조해졌지만 역시 생애최초 맥모닝을 먹으러 온 가엾은 백수에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선착순 300명안에 든 것이다.


드디어 맥모닝을 받았다. 우리는 1층 구석자리에 앉았다. 이게 웬 횡재냐며 맥머핀 봉지를 까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맥모닝은 생각보다 크기가 매우 매우 작아 실망할 뻔했으나, 역시 아침에는 소식이 답이라며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햄과 계란 사이에 진득하게 눌어붙은 치즈의 맛이 일품이었다. 햄버거와는 분명 다른 가벼움이 있었다. 맥머핀은 정확히 여섯 입으로 끝났다. 우리가 맥머핀을 먹는 데 오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작 이거 먹으려고 일찍 일어났나? 하는 자괴감 대신, 아침 일찍부터 새로운 맛을 맛보아서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아침부터 맥모닝을 먹으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니 어찌나 산뜻하고 뿌듯한지 벅찼다. 앞으로는 부지런히 일어나서 밤과는 확연히 다른 아침 세상의 맛을 보자고 다짐했다. 삼십 년 동안 거들떠도 안 보던 맥모닝을 먹고 나는 새 출발을 하는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그러니 오늘을 기념비적인 날로 삼아, 나태해질 때쯤에는 꼭 맥모닝을 먹으리라 다짐했던 그날 이후 나는 맥모닝을 구경해보지 못했다. 꿈에서는 몇 번 먹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더이상 맥모닝 알람을 맞추어도 벌떡 일어나지 못한다. 맥모닝이 내게 알려준 부지런한 아침을 한번 경험해본 탓인지, 한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고 걸어나와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맥모닝도 좋지만, 아무래도 나는 늦은 저녁 상하이버거세트를 배부르게 먹는 게 더 큰 만족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세상은 맥모닝을 먹어 본 사람과, 먹어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나는 전자가 되었으니 더 이상의 여한은 없다는 말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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