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도 헤어져야죠.
처음으로 술집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20살이 되었던 그해 1월, 친구들과 서로의 팔짱을 끼고 일렬행대를 유지한 채 옷가게에 들어갔다. 내일 처음으로 술집에 방문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였다.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 진지하게 서로의 복장을 골라주었다. 나는 부직포 재질의 갈색 코트를 3만 원이나 주고 샀다.
다음날, 값싼 코트를 입고 방문한 내 인생 최초의 술집은 인생 최고의 노잼으로 남았다. 정말이지 노잼에 노잼에 핵노잼이었다. 파인애플 소주를 여섯 명이서 나누어 먹은 탓인지 어느 하나 취하지 않은 채, 서로를 말똥말똥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첫> 술집이란 사실에 거하게 취해있던 탓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엄마가 누누이 말해주었었는데, 그제야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코끝 시린 겨울바람이 불면, 코트를 입고 술집으로 들어갔던 처음이 생각난다. 역시, 처음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술집에 가는 별거 아닌 일도, 앞에 <첫>이라는 말이 붙으니, 마치 어렵지만 멋진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때로는, 처음이 가진 힘 앞에 힘껏 무력해지기도 하는데, 이별이 특히 그렇다.
<첫 이별의 공포>
불닭볶음면을 처음 먹었던 날도 잊을 수 없다. 면을 들어 올려 입에 넣는 순간,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을 익히 들었다. 맵 찔이였던 나는 주변인들의 말만 듣고, 불닭볶음면을 입에 대지도 않고, 상상으로만 먹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매운맛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오는 법, 나의 첫 이별도 그렇게 왔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 10명, 아니 100명을 잡고 물어본다면 120% 당장 헤어지라 할 만큼, 나의 첫 상대는 내게 해로운 사람이었다. 나도 무척이나 잘 알았고, 지금 당장 헤어져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나쁜 짓을 할수록 더더욱 그의 곁에 찰싹 붙어있기를 원하는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진짜 이게 마지막일까 봐 무서워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별의 아픔, 그 상실감을 내가 극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지금 헤어지고 마주하게 될 무서운 순간들을 회피하려 고개를 돌리고, 흐린 눈으로 데이트를 했는데, 이런 노력은 이별을 유보했을 뿐,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내게도 첫 이별의 순간이 왔다. 첫 이별의 맛은 역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매운맛이었다. 머리를 묶은 채로 머리를 감고, 수건을 속옷 서랍에 갖다 둔다던지, 전화 벨소리에도 가슴이 쿵 내려앉아 갑자기 눈물이 난다 던 지 등의 이상행동은 계속됐다. 친구들 앞에서 쿨한 척을 하려다, 쿨하지 못해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었다.
아, 헤어지면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는데 그런 일도 역시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 점점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친구들 앞에서 그 사람 이름을 불러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반년 뒤에는 그 사람의 목소리도 흐릿해졌다. 그리고 1년 뒤, 전화번호를 까먹었다. 그리고 지금, 그를 생각하려 해도 도통 제대로 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세상에 없는 사람인 것만 같다. 게다가 첫 연애는 마치 전생같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불닭볶음면급의 매운맛을 맛보기도 전에, 이별하면 죽을까 봐, 큰 병이라도 걸릴까 봐, 힘들까 봐 무서워서 도망 다녔는데, 막상 이별을 먹어보니 진라면 매운맛 정도의 맵기에 불과했다. (맵긴 매운데 많이 힘들지는 않은 정도) 게다가 혀끝에 남아있는 매운맛은, 우유나 초콜릿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 친구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해결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마저도 해결이 안 된 매운맛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없어졌다.
물론, 첫 이별을 했다고 두 번째 이별은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이별도 매운맛 일 수 있다. 만약, 너무너무 헤어지고 싶고, 머리로는 헤어져야 하는데,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에 첫 이별을 미루고 있다면, 나는 화끈하게 매운 불닭볶음면식 이별을 추천드린다. 때로는, 매운맛을 보는 게 건강에도 좋으니 말이다.
특집이 필요 없는 이별
오래전, 즐겨 들던 라디오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주제에 대해 물었다. 나는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이별이요, 이별을 특집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마침 이별을 한지 얼마 안 되었던 차였다. 몇 분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DJ는 내 사연을 또박또박 읽어주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별이란 게 특집이 필요할까요, 매번 이별하고 사는 게 삶인데."
머리를 콩 하고 맞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뻔했다. 나는 나의 이별이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큰일을 겪고, 가슴 아파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나는 사라지고, 작아졌다. 마음속에는 늘 여름의 날씨를 안고 살았다. 언제나 비가 왔고, 맑게 개였다가도, 난데없이 강한 바람을 밀고 오는 태풍에 다시 한번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 나의 사랑은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보다 특별했고, 나의 이별도 영화처럼 특별하다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특별하고 대단해 보이던 나의 이별이, 나의 구남친의 모든 것이 평범해지고 시시하게 느껴졌다. 매번 이별하고 사는 삶이라는 사실에 기반한 모든 일은 일어나야 했으니 일어난 일이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이고, 다시는 보지 않을 인연이라는 자기 암시를 통해,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아픔을 지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