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구남친대표곡 좋니의 효과
대차게 차인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깊은 사색에 잠겨 길을 걷는데 누군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저기요" 목소리만 들어도 도쟁이였다. "혹시 잠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쌩하고 신호등을 건넜다가 다시 그에게 다가가 묻고 싶었다. 왜요? 제가 꼭 이별한 사람처럼 생겼나요?
그와는 두 번째 이별이었다. 첫 번째는 너무 슬펐는데, 두 번째는 슬픔보다 분노의 감정이 앞섰다. 헤어지고 분명 다시 만나자고 했던 건 내가 아닌 그였으니까. 나는 눈물을 한 바가지나 흘리면서 어금니를 깨물며 즐그르.... 그동안 그므으따....라고 말한 뒤, 쿨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슬펐지만 후련했다. 또 한 번 제대로 차이니 정신이 차려지는 것도 같았다. 그래, 두 번이나 헤어진 걸 보면 우리는 정말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아오 후련하다 후련해!! 라며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인 지 34시간도 안 되었을 때, 나는 눈물 콧물을 흘리게 되는데...
좋니를 듣게.. 됐는데..
좋냐고.. 사랑해서 좋냐고.. 네가 사랑할 때 얼마나 이쁜지 아냐면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모습을 잊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좋니를 들으며 엉엉 울었다.
이별병, 좋니 병에 단단히 걸렸던 나는 혼자 코인 노래방에 잘도 갔다. 무조건 첫 번째 노래는 좋니. 올라가지도 않는 고음을 냅다 지르며 아프다아아아아라고 고백하고 나면 이상하게 더 마음이 아프고 아리고 쓰라렸다. 밥은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 엉엉 울면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살 빠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윤종신의 목소리에 그를 대입했고, 혹시 그가 나를 차 놓고 혼자 이렇게 슬퍼하며 끙끙대지 않을까 몹쓸 걱정까지 하기 시작했다. 미쳤구나 미쳤어. 샤워를 할 때도, 식전 기도를 할 때도,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도 불쑥 좋니 가사가 튀어나왔다. 이쯤 되니 내가 좋니 때문에 힘든 건지, 그 때문에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감정의 불순물이 좋니를 만나자마자 파바박 불꽃을 일으키며 감정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좋니는 기껏 잘 말려놓은 감정을 다시 미련과 분노의 몹쓸 감정으로 흐트러놓았다. 분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노래를 만들었다는 윤종신 씨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수 없었다. 24시간 연속 재생을 해 놓은 사람이 나였으니까. 한번 들으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아 수능 금지곡이라 불리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이별에도 금지곡이 있었다는 사실을 살 5kg가 빠진 뒤에야 알았다.
좋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될 기억을 하게 되고, 더 이상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헤어진 후 찌질한 감성에 취해, 그의 동네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등의 헛된 기대를 하나둘 가지게 된 것. 결국 나는 좋니를 들으며 그를 찾으러 버스에 올라타게 되는데.. 아, 정말 아찔했다. 두 번이나 싫다고 차 버린 놈을 다시 만나서 뭐하게??? 정신을 차리기 위해 나는 과감하게 리스트에서 좋니를 삭제하기로 했다.
그리고 찌질하지만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그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다. 좋니처럼 십 분의 일만이라도 아프다 행복해달라는 말에 동의하지도 않았다. 십 분의 일만 행복하고 십 분의 구는 불행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 안에서 그를 지우려 애썼다. 그러다 결국, 내게도 그날이 왔다. 그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닌 날. 소식을 전해 들어도 "안물! 안궁!"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날.
좋니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그의 망령이, 남아있던 바보 같은 미련이, 그에게 상처 받았던 말의 조각들이 분해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꾼 듯했다. 어쩌면, 그와의 시간도 그저 그런 꿈을 꾼 거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니 좋니 덕에 이별의 아픔을 극복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펑펑 울며 감정을 흘려보내는 행위는 너무 힘들었지만, 조금은 빠르게(?) 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던 건 아닐까.
더 이상 좋니를 들어도 눈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좋니를 들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죽고 못 사는 연인도 언젠가는 스쳐가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극복할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은 없고, 지나가지 않는 추억도 없다는 것을. 그런 의미로, 원작자 윤종신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다고. 당신의 좋니 때문에 졸라 괜찮아졌고, 좋니를 만들어주셔서 존니 감사하다고 말이다.
미련을 버리고 싶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이별 후, 나는 연애 커뮤니티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 남자분에게 연락이 올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희망이 보이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나의 기대는 한순간에 구겨져버리고 말았다. "그런 사람을 왜 만나요, 왜 기다려요?"라는 무서운 말을 들었다. 댓글들을 읽으면 또다시 차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게시판을 떠날 수 없었다. 항상 헤어졌다는 글을 읽고 또 읽던 어느 날, 의미심장한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글의 제목은 이랬다.
“며칠 전에 재회 타로 봤는데, 오늘 재회했어요!”
재회 성공? 재회 타로? 타로라면 대학생 때 한번 봐본 게 단데, 정말 그걸로 재회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보다는 오늘 재회했다는 글쓴이가 부러웠다. 곧장 타로 가격을 문의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단순 재회 타로 30,000원
무제한 질문 가능 50,000원
무제한으로 물어볼 것도 없이, 나는 그와의 재회 가능성만이 궁금했다. 30,000원을 서둘러 입금하고 몇 가지의 정보를 알려주면 곧바로 결과를 알려준다. 첫 번 째 타로에서는 재회가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나를 좋은 친구 정도로 생각하지 미래의 상대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마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나는 두 번째 타로 문의를 남겼다. 이번에는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애매했다. 남자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조금 기다린다면 만나게 될 기회가 생기고, 그때 이쁘게 하고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했다. 그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여기서 그만두었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나는 한번 더 타로를 보게 된다. 아니 이게 웬걸, 이번에는 재회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부가적인 설명을 듣자니 또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내가 기본적으로 제공한 정보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답변이라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타로에만 쓴 돈은 20만 원이 넘어가게 되었고, 구남자 친구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타로에 의존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미련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적당한 타로운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과도한 타로운은 미련을 버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차라리 '좋니', '체념' 같은 이별 노래를 들으며, 마음껏 펑펑 울어내면서 미련을 떨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