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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로 막을 것은 호미로 막자.

가래떡 먹기를 참 잘했네.

by 프니

첫 이별을 한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언제 붙인 지 기억도 안나는 야광별을 보면서, 눈을 껌뻑 껌뻑 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광대를 타고 줄줄 흘렀다. 주말이 되면 침대에 몸을 맡겼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도 무시하면서.


그렇게 슬픔에 허우적대다 보니, 점점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별의 아픔에는 끝이 있을까?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울부짖던 여가수의 노래는 1분 1초도 멈추지 않고 마음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그래, 이별은 누구든 겪는 일이야.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꾹 참아보아도, 또다시 어두운 밤이 되면 차가운 상실감에 전복되고 말았다. 흩날리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 이별도 처음이었고, 이런 일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주중에는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하게도 정을 붙이고 다닐 수 있는 다정한 동료들을 만났으며, 새로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전 남자 친구의 얼굴을 잠시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일이 났다. 옆자리 직원 언니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집에서 가지고 왔는데 하나 먹으라며 건네는 가래떡을 한 입, 두입 베어 먹었을 때였다. 쩝쩝 사운드에 와그작이라는 잡음이 들렸다. 휴지 위에 퉤퉤 하고 뱉은 가래떡 사이로 자그마한 게 반짝였다. 금니 조각이었다.


나는 곧장, 가까운 치과에 예약을 하고 혹시 몰라, 부서진 금니를 휴지에 꽁꽁 싸매 치과에 갔다. 금니를 다시 붙여줄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선생님은 가래떡을 먹다 금니가 떨어졌다고 슬퍼하는 환자의 말을 듣고는, 구석구석 상태를 점검해주셨다. 문제는 부서진 금니뿐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휴지로 꽁꽁 싸맨 금니조각은 붙일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두 달간 본격적인 치료를 받았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치아들을 다시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었다.




어우, 가래떡 하나 먹다가 돈 몇백이 깨졌네.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치과 문을 나섰다. 찬 바람이 입안으로 쑤욱 들어와 상쾌해졌다. <어우, 가래떡 하나 먹다가 돈 몇백이 깨졌네>라고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는 그러니까 왜 제대로 해동되지도 않은 가래떡을 용감하게 먹었냐며 나의 업보라고 했다.


가래떡 먹기를 참 잘했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해동이 제대로 되었는지 만져보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치과에 갔을까? 아니었다. 해동이 잘 되지 않은 가래떡을 먹지 않았다면, 스스로 치과에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 테다. 즉, 내 문제를 입안에서 계속 방치해두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 몇백이 아니라 천 단위의 돈이 깨졌을지도 모를 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뻔 한 것이다.


첫 이별도 그랬다. 헤어진 후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때, 내가 그 행동을 하지 말걸. 아니야. 애초에 그때 헤어졌어야 했는데. 아니다.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말을 했기 때문에, 그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과 헤어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항상 혼자 외롭고, 힘들고 아픈 사랑을 하면서 쉽게 놓지 못하던 손을 그때의 그 순간들이 해결해 준 건 아닐까.


와그작 하고 부서진 금니가 언젠가는 부서질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던 것처럼, 내 연애도 언젠가는 끝장 날 준비를 하고 있던 건 아닐까? 이왕이면 그런 (나쁜) 남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다음 연애에서 나를 보호하고, 상대방이 던지는 안 좋은 신호 등을 구분할 수 있는 튼튼한 몸과 마음을 얻은 셈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앉아, 튼튼해진 이로 과거를 곱씹으며 나를 위로했다. 야광별을 올려다봐도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건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뒤였다.



미련을 떨쳐 낼 마인드 정립하기


이별은 절대로 갑작스럽게 오지 않는다. 상대방은 분명한 힌트를 주었고, 내가 그 힌트를 먹고 버렸을 뿐이다. 나의 첫 이별도 그랬다. 이별은 사실 예보도 없이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아니었고, 2주전부터 예고하던 드라마 같았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던 마음에서 경험한 이별이었다.


이별을 당하면 가장 먼저, 나의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내가 싫었으면,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별을 하자고 했을까? 에 대한 생각은 내가 그렇게 힘들게 하지 말걸, 그때 핸드폰을 보지 말걸, 생일선물 안 줬다고 삐치지 말걸, 우리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지 말걸 등이라는 자기혐오의 생각으로 퍼진다. 마치 지독한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된 듯 화살의 방향을 나로 바꾼다. 이렇게 생각해야 상대방의 감정은 아직 남아있을거야,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며칠 뒤에 후회한다는 카톡이 오지 않을까란 기대라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장기적으로 지속 될 경우 결국 또 한번 거하게 다치고 만다.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때문이야, 나때문에 이렇게 헤어지게 된거야.라는 마음은 이제는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상대방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만져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 쪽으로 당겼던 화살의 날카로움에 내가 찔리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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