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삼키지 말고 흘리세요
"아, 제가,,, 다들 아시겠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잠시 내려가 있던 MC가 무대 위로 올라와 서둘러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공개연애를 하고 결별을 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생각지 못한 그의 눈물로 녹화는 딜레이 되었지만, 관객들은 천천히 그를 기다렸다.
무사히 노래를 마치고 토크를 이어가던 그의 눈에서는 또 한 번 눈물이 뚝 떨어졌다. 크고 동그란 눈에 눈물이 맺히니 꼭 보석같이 빛났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보석이었다. 당시 구남친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질 때마다, 내 손을 힘껏 꽉 잡았다. 그의 힘이 느껴질 때마다 무대 위에 있는 그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울지 않아 다행이라는 비겁한 생각을 했다. 당시 나는 아직 이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 나의 손을 꼭 붙들던 그에게 이별을 당했다.
일을 하기 위해 새로 뽑았다던 신형차를 타고 우리 집 앞으로 온 그는,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 차 안에서 헤어지자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의 답을 듣고 괜한 것을 물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의 답은 단순했다.
"더 이상 노력할 힘이 없어, 우린 이미 끝난 거 같아."
그의 말을 듣자마자, 몇 년 전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울어버렸던 가수처럼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렇게 순식간에 온몸이 용광로처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질 수가 있구나, 격렬한 감정은 눈물을 그렇게도 빨리 만들어 낼 수 있구나, 아, 그때 그는 그렇게 눈물을 흘린 거구나.
그렇게 첫 이별을 했다. 드라마를 통해 사랑을 예습했던 나는 이별 또한 예의 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끝날 줄 알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무작정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처럼 슬프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다면, 갑작스러운 이별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실전이었다. 첫 이별의 눈물은 아름답기는 개뿔, 세상에서 처음 느껴본 복합적인 맛이 났다. 눈물에서 맛이 난다면, 아주 고약하기만 하고 건강에도 안 좋은 몹쓸 맛일 것이다. 입안의 불순물들을 모아 퉤퉤 뱉어낸 뒤 가글을 하면 없어져버리는 단순한 맛이 아니라 또 슬펐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화장실 두 번째 칸에 들어가 주먹을 쥐며 울었다. 다음 이별은, 금요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두 달 쯤부터였다. 슬슬 입가에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을 따라 눈을 바닥으로 떨굴 때면,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물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아니 나는 왜 그랬을까, 사랑은 정말 변하는 것인가, 그럼 시작도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금요일에는 퇴근 후, 무조건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의 제목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어두운 곳에서 앉아 쉬고만 싶었으니까. 나만의 시간으로 하루를 가득 채워 나가며 나는 그를 점점 잊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안부를 묻자마자 다시 눈물이 났지만, 신기한 것은 눈으로는 울면서 입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아, 나 이제 진짜 안 슬프고 웃긴데, 왜 울지."
카페 이름이 붉게 인쇄된 냅킨으로 눈을 꾹꾹 눌렀다. 키친타월보다는 부드럽지만, 일반 휴지보다는 빳빳한 촉감의 냅킨은 나의 눈물을 빠르게 흡수해주었다. 아이스초코의 얼음을 건져 먹고 나서야 눈물이 그쳤다. 얼음 때문인지, 눈물이 증발해버려서인지 후라보노를 먹은 것처럼 가슴에는 상쾌함이 한가득 채워졌다. 그제야 그동안 내가 펑펑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다. 눈물은 가슴속에 박혀버린 추억을 흘려보내기 위해 흘린 것이었다는 것을.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되면 함박눈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살아가며 삼켜야 할 것들은 너무도 많다. 맛있는 음식도 꼭꼭 씹어 삼켜야 하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도 꿀꺽 삼켜야 할 때가 온다. 하지만 이별까지 한 마당에 흘려보내야 마땅한 눈물마저 삼켜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 아닌가. 너무 울면 울보가 되어 마음이 순두부처럼 약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수도 있지만, 엉엉 울다 보면 으어억 소리를 일부러 내어도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는 날이 오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도 없다. 무대 위에서 눈물을 왈칵 쏟아냈던 그의 용기가 참 근사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