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네요, 남편이 들어오죠.

신혼집의 문.

by 프니


첫눈에 난 알았다. 남편을 처음 만났던 2018년 여름, 시끄러운 카페에 앉아 대화를 한 시간 쯤 했을 때였나. 갑자기 내 마음속에서 아주 큰 음성이 들렸다.


"결혼까지 하겠네, 무난하게. 단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종교인데, 뭐 이것도 무난하게 넘길 거 같고, 결혼각이다."


내 앞에서 여행이야기를 하느라 신난 소개남(현남편)을 보면서 나는 몰래 흑심을 품었다. 그리고 혼자 언제 손을 잡지? 라는 생각도 해보고..


어짜피 결혼할 거? 빨리 사귀고 빨리 손도 잡고 싶고, 안고 싶다는 마음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우린 결국 사귀었고 나의 예언대로 결국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정확히 반년.

그 사이 우리 각자에게는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나는 다시 한시적 백수가 되었고, 남편은 여전히 이직을 하지 못해 새벽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을 나선다. 내게는 한창 새벽인 오전 7시 30분, 38분 지하철을 타러 총알처럼 뛰어나가는 남편의 뒷 모습을 본 적은 정말 드물다. 원래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나는 평소 3시 취침-12시 기상 루틴을 가졌다.


왜 그렇게 새벽마다 잠을 못 자겠고,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고, 뜬금없이 펜을 잡고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것인지



그래서 남편에게도 편지를 썼다.

내용요약: 노고가 많습니다. 나를 보고 힘내세요


2월 26일, 오전 1시 36분



두번 째 편지를 썼다.

내용요약: 치과에 다녀온 후 나의 마음변화. 결론은 우리 모두 힘내자.

이날은 레모나까지 붙였다.

3월 26일, 오전 3시 49분



세 번째 편지도 썼다.

내용 요약: 방울토마토 새싹을 보고 흥분한 나의

새벽감성을 엿볼 수 있다. 내용은 그냥 잘 살자고.

5월 18일, 오전 2시 43분


이번에는 비타민씨 1주일치를 함께 붙였다.빠알간 포장지 때문인지 문이 확 산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문에 고리를 달고, 마스크를 꽂았다. 급히 나가다보니 마스크를 까먹고 나간 적이 많다는 말을 듣고 곧장 마스크를 다니, 세상 뿌듯.






우리 집과 세상을 이어주는 하나의 통로, 문. 나는 이 공간을 그냥 싱겁게 냅두기 싫었다. 하루 중 무조건 한번씩은 마주하는 하얀 문, 일하러 나가기 전 그 문에 붙어있는 편지, 마스크,비타민이 잠들어있는 나 대신 남편에게 "오늘도 힘내"라고 말해준다.


새벽마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쓰고, 문에 비타민을 붙이다가 쿨쿨 자는 남편을 볼 때마다 설렜다. 나는 비록 내일 아침에 저렇게 널부러져 자고 있겠지만 요 문이 나 대신 남편을 배웅 해줄걸 생각하니까 을마나 설레고 재밌던지.


오늘도 남편은 문을 통해서도 다정한 아내를 만나는 이 시대의 복 받은 남자라고 세뇌를 당하고 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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