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 과욕이 부른 대참사
20살의 나는 진짜 웃긴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반숙도 완숙도 아닌 반완숙의 상태로 여기저기 존재감을 남기려 노력하는 한마디로 중심 없는 캐릭터였다. 때문에 술을 못 먹는 체질임을 알면서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김 프리 너는 오늘도 사이다?"
"음,, 아니 오늘은 콜라로 할게."
다행히도 술 대신 먹을 건 많았다. 사이다가 질리면 콜라를 먹으면 되고, 운이 좋으면 환타를 주문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술집 주방에는 도대체 어떤 분들이 계시는 것인지, 안주 맛이 하나같이 기가 막혔다. 특히 스무 살 때 처음 알게 된 알탕의 칼칼하고 개운한 맛은 술을 안 먹고도 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친구들이 한잔, 두 잔 할 동안 나는 구석자리에서 공깃밥까지 추가하며 식사를 했다. 그래서 술집을 나올 때면, 친구들은 술에 취해 휘청 휘청거렸지만 나는 언제나 맨 정신인으로 배만 불렀다. 심지어는 배불러서 토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 술집은 숨어있는 로컬 맛집 같은 곳이었다. 술은 먹지 않은 채 밥을 먹으러 술집에 드나들던 어느 날 , 한 친구가 말했다.
"아니 근데 우리 너무 안주 많이 먹는 거 같지 않냐?
술값이 장난 아냐.. 아니 안주값."
그 말을 듣던 친구들은 하나둘 파도타기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나는 작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뜨끔했다. 내가 친구들의 소중한 안주를 너무 거덜 대긴 했었나..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나는 스무 살 만의 총명함을 발휘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안주 대신, 공짜 안주를 공략해보자는 대견하고 기특한 생각이었다. 술집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안주는 대부분 가벼운 것이었다. 강냉이, 노란 뻥튀기, 마카로니 뻥튀기, 형형색색 동그란 뻥튀기, 구운 김, 프레첼 등. 그렇다. 사실 대부분은 뻥튀기였다. 자주 가던 술집은 카운터 옆쪽에 뻥튀기 통이 놓여있었다. 셀프 리필이라는 근사한 마케팅이었다. 나는 그것을 놓칠 리 없었고, 주야장천 뻥튀기를 퍼갔다.
(뻥튀기 퍼가요~)
"어제 삼겹살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와.. 나는 안주 같은 거 못 먹을 듯! 너희 먹고 싶은 거 시켜. 나는 진짜 배불러서.. 와.. 사이다도 겨우 먹겠다. 가끔 뻥튀기나 먹음 될 듯!"
세상에 이런 착한 친구가 있을까. 친구들아, 천사의 모습이 궁금하거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렴. 사실 친구 중 아무도 내게 눈치를 준 적도 없는데 혼자 난리를 친 셈이었다. 아무튼 그날의 기본 안주는 마카로니라고 불리는 뻥튀기였는데, 치킨집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바삭바삭한 식감과 부담 없는 크기였지만, 신기하게도 배가 불렀다.
"성공이다! 나는 이제 배가 부르니 더 이상 배부른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겠군. 흐흐" 흐뭇하게 생각했던 그때만 해도 몰랐다. 사람이 술집에서 술을 안 먹고도 토할 만큼 배가 부를 수 있다는 것을, 토할 만큼 힘든데도 멈출 수 없는 뻥튀기가 있었다는 것을, 결국 집으로 돌아와 그것을 게워내어 버린 후에도 공짜라는 생각에 또 한 번 집어먹는 미련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친구들에게는 내가 술집에 갔다가 뻥튀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토를 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뻥튀기에 단단히 데인 그날 이후로 뻥튀기 대신 안주를 적당히 먹었고, 결국에는 친구들이 나 빼고 술집에 간다 해도 서운하지 않은 서른이 되었다. 아닌 건 아니고, 기면 기다를 조금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기적의 삼십 대! 이것을 연륜이라 부르는 것인가?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뻥튀기 트럭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오두방정을 떨며 뻥튀기를 구매했다.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복장으로 경건하게 뻥튀기 앞에 앉았다. 뻥튀기를 먹고 토할 만큼 배가 부른대도 평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쾌적한 화장실도 있으니 아주 배 터지게 먹자고 다짐했건만 그 각오는 얼마 가지 않아 퍼~~ 엉하고 터져버렸다. 느끼한 기름 맛이 쏙 올라와 입이 꾹 하고 다물어진 탓에 더 이상 뻥튀기를 집을 수 없었다.
"이거 어릴 때는 맛있었는데, 왜 이렇게 느끼하지? 웩웩"
"그건 술집에서 먹어야 맛있는 거지~"
"헐?????????"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계단 입구부터 고약한 술냄새가 진동하는 술집에 들어가 뻥튀기를 안주삼아 술을 진탕 먹고 싶어 졌다. 이십 대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술맛을 이제라도 맛보아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며 다시 한번 뻥튀기를 퍼왔다. 역시 얼마 가지 않아 속은 느글느글해지고 혓바닥에는 느끼한 기름이 흘러내렸다. 돌도 씹어 먹을 수 있던 20살의 나는 과거형이 되었고, 소화력이 상실된 현재 진행형의 나를 만난 그 날. 그날은 또다시 과거가 되었고, 다시 한 움큼의 뻥튀기를 집어 먹고 있는 오늘은 2021년 4월 20일, 오후 세시 사십 분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