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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하니까 이별이죠. 이별의 품격

by 프니

20살, 친구를 만나 라볶이를 먹을 때였다. 완전하게 익은 계란 노른자까지 완벽한 라볶이를 앞에 두고 친구는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한숨을 거하게 쉬었다. 친구는 냅킨을 꺼내 얼굴에 갖다 댔다. 뭐야, 설마 우는 건가?

다행히 친구는 코를 흥하고 풀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거든? 내가.. 진짜.."

"아니 진짜 내가 이런 찌질한 구여친이 될 줄 몰랐는데,, 나 어제 박상훈(가명) 싸이월드 들어갔잖아. 아흐"


일주일 전쯤 친구는 상훈 팍과 헤어졌다고 문자를 보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주겠다고 했고, 그날은 그 이야기를 들을 차례였다. 그러니까 친구는 자신이 그만 만나자고 상훈 팍을 찼지만, 사실은 본인이 차인 거나 다름없다고 말하며 단무지를 씹었다. 이별경험 0회 차였던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 가지 않았고, 전 남자 친구의 싸이월드를 염탐한 게 왜 자괴감이 드는 짓인지 그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 30살이 된 나는 이별 후 엄청난 자괴감에 빠졌다. 헤어지고 며칠 되지 않은 날, 친한 친구도 이별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사귀었는데 우리는 같은 시기에 보기 좋게 차였다. 우리는 이것을 이별 동료라고 부르기로 했다. 때마침 백수였던 친구와 나는 슬픔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쓰다듬고, 위로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건 정말 비극이고, 고통이었지만 그럼에도 조금 힘을 낼 수 있던 것도 분명 이별 동료의 도움 덕분이었다.


구남친의 비공개 인스타에 기웃기웃 대다가, 외워두었던 친한 친구의 인스타를 들어가서 구남친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가, 카톡을 차단했다가, 다시 풀었다가, 상태 메시지를 비장하게 바꾸었다가 다시 복구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쓰러지지 않도록, 구남친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하루 종일 구남친 욕을 하다가 사실은 그리워서 욕한 거야 라고 말해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친구 하나였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극복하던 어느 날,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름하여, 이별여행.

이별여행이라고 당사자와 가란 법은 없다. 가고 싶어도 안 가줄뿐더러, 우리의 이별여행은 진드기처럼 붙어있는 미련과 이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친구 동네에서 만나 빨간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영종도에 도착했다. 평일이었지만 관광지는 관광지였다. 대충 국수로 끼니를 채우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비둘기 반, 커플 반, 그리고 우리 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걸었다.


푸우 우우욱


모래에 파묻혀가는 신발 소리에 집중하면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귀를 세우면서. 친구는 물가 쪽으로 걸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물, 하늘, 친구가 한 프레임에 담겼다. 친구도 나를 찍어주고,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또 한 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 집으로 갈 때가 된 것도 같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인천공항이었다.


홀가분해지려고 떠난 이별이었지만, 공항으로 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에게는 사실 어마어마한 플랜, 이별여행을 화려하게 장식할 마지막 코스가 있었다. 공항에 들어간 우리는 셔터를 눌러댔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뒷모습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발, 도착지가 정신없이 적혀있는 파란색 큰 판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찍어댔다. 누가 보면, 곧 출국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을.


"야야 조금만 뒤를 조금 돌아볼 듯 말듯하게.."

"오 좋다 좋다! 진짜 떠나는 사람 같아"


떠나는 척을 실컷 하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주고받았다. 저장, 저장, 이것도 저장. 휙휙 손가락으로 사진을 넘기며 신중히 고른 사진으로 카카오톡 프사를 변경했다. 공항 사진이 직빵이긴 할 거 같은데, 그건 정말 허언의 삶인 것 같아서 창피했고, 무난하게 영종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꿨다. 그렇다. 우리는 프사를 통해 구남자 친구의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해 끝끝내 연락을 받아낼 참이었던 것이었다.



<나의 상상>

@누군가 찍어 준 듯한, 그것도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을 프사로 함, 적어도 하루 이내로 연락이 올 가능성 90%.


"잘 지내.?"

"응 왜?"

"아니, 잘 놀러 다니기도 하나 봐."

(역시 내 계획이 통했군 크크크)



<나의 현실>

@구남친에게 연락은커녕 혼자 바닷가에서 서있으니 외로워 보인다는 엄마의 지적이나 받음. 구남친 연락? 1도 없음


이상은 높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날을 이후로, 나는 10년 전 친구의 자괴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뭐야, 내가 이 정도라고? 아 진짜 내가 이럴 줄은 몰랐는데.."

구여친의대명사,커피프린스한유주

서른이나 먹고 저렇게 유치하고 찌질한 생각을 해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다가도, 그래도 저때 아니면 저렇게까지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겠나 싶으면서도, 나 싫다고 사라진 구남친에게 그만큼의 미련이 남았다는 게 열 받으면서도, 저런 짓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끝내버린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 찌질의 끝을 본 후에야, 재회라는 허황된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앞뒤 재지 않고 마음껏 찌질해진 내가 기특하고 또 기특할 뿐.


그러니까 이별은 똠양꿍 같은 것. 다시는 악취를 맡고 싶지 않아 외면하다가도, 똠양꿍의 시큼한 냄새와 매운맛을 코가 기억하고, 눈이 기억하고, 혀가 기억하는 그런 것. 지나간 나의 이별에서는 썩은 미련으로 가득 차 걸레 빤 물 같은 냄새가 났지만, 그것은 맘껏 사랑하고, 맘껏 그리워하고, 맘껏 미련을 가졌던 사람의 찬란하고 훌륭한 품격이었다.




미련을 털어내는 단순한 방법


"걱정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약이라니까."


이별 후,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나는 이토록 잔인한 위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1년 같고, 한 시간이 한 달 같은데 시간이 언제 간다는 거야.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흐르는데 언제! 어떻게! 내가 괜찮아지냐고! 따져 묻고 싶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그만한 위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의 진리를 깨닫기 전에, 나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두 번의 이별 모두, 나는 뻥! 하고 차였는데,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붙잡는데 최선을 다했다. 보고 싶으면 연락했고, 툭하면 카톡을 보냈으며, SNS를 염탐하며 그의 흔적을 찾느라 힘과 혼을 빼앗겼고,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의 동네 주변을 맴돌다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수신거부를 당했으며, 바람을 피우고 나를 떠난 사람에게조차 "모든 것을 다 용서할 테니, 다시 만나자"라는 말도 안 되는 말로 붙잡았다가, 제발 그만 좀 하라며 너란 사람이 이제는 질린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때서야 맛이 갔던 정신머리가 돌아온 것일까. 나는 그딴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연락처를 지우고, 염탐을 그만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부지런히 흘렀고 거짓말처럼 나는 더 이상 그가 보고 싶어지지 않았다. 뭐지? 정말 친구들 말처럼 시간이 흘렀기에 괜찮아진 것일까? 물론, 시간의 덕을 보았지만 가장 큰 공은 바로 나였다.


구차하리만큼 매달리고, 붙잡고, 질리게 하고도 돌아오지 않는 그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


얼마 뒤, 이별을 하고 온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미련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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