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이자 마지막 출근 날. 느지막이 일어나, 느긋하게 출근했다. 오전에는 화장품 박스의 내부 용기를 만드는 일에 차출당했다. 각을 접고, 스티커 테이프로 고정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일이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덜 준 채로 테이프를 붙이면 그 틈이 쉽게 떠버렸고, 곧장 혼이 났다.
"이렇게 하면 불량입니다. 불량".
"불량.."
"불"
수없는 <불량> 속에서 <합격>이라는 말을 듣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됐어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마스크로 감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작은 일의 성취는 큰 기쁨을 가져다줬다. 그러다 다시 복귀 명령을 받아 3층으로 이동했다.
"한 사람은 이 박스를 옮겨주세요" 그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제가요? 이걸요?' 하는 표정을 지어봤지만, 반장님은 등을 돌려 재빠르게 2구역으로 뛰어갔다. 박스 가까이에 서있던 내 잘못이다, 생각하며 치약 박스 하나하나를 작업대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도깨비들이 뿔 달린 방망이로 마구 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쓰러질 것도 같았다. '아 진짜 못한다고 하고 가버릴까. 그냥 반나절 일당은 포기하고 간다고 해버릴까..'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을 뿐이고..
"밥 먹으러 갑시다"
도망가더라도 밥은 먹고 가자라는 마음으로 식당으로 달렸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맛이 일품인 김치 콩나물국을 먹으니 온몸에 힘이 솟았다. 아삭아삭 씹을 때마다 새어 나오는 콩나물의 향이 나를 위로했다. 그래, N 년의 직장생활도 참았는데 고작 4시간을 못 참겠는가? 가자, 가자. 치과도 가야지!
드디어 오후 업무가 시작됐다. 오전처럼 박스를 들기 위해 허리를 굽히려는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위대하신 반장님은 내게 교대를 명하셨다. 감사합니다. 반장님! 허리를 90도로 숙여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반장님은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말 한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900장, 아니 9,000장은 거뜬하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정말 그랬는데..
어떤 것이든 100% 만족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스티커를 붙인 지 30분도 안 되어, 다시 모가지가 아프기 시작했다. 내 몸이 어딘가 고장 난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 끝도 없이 나오는 치약, 그러니까 절대 로맨틱할 수 없는 분위기. 힘든 노동에 취해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운 반장님의 목소리.
"수고했어요-가봐요"
역시 시간은 갔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이틀의 시간은 모두 지나갔고, 나의 임무도 끝났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곧장 손에 쥐고 있던 스티커를 던져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건물 밖을 뛰쳐나왔다.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걸어가는 사람, 어깨를 툭툭 치며 걸어가는 사람 뒤에 뛰어갈 힘이 없어서 눈앞에 버스를 놓치고 만 내가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이틀이었다고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핸드폰에는 읽지 않은 문자메시지 알림이 떠있었다.
[(광고)[탈잉] 언제까지 회사'만'다녀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도 돈 벌 수 있어요!...]
광고 문자에 울컥 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도 모르게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눈물을 타고 고등학생 때의 나로 점핑했다. 나는 한 번도 <이과와 문과> 사이에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문과였다. 물론, 문과에 가서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나이를 먹으면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식의 무계획으로 20대를 보냈고, 정말 어쩌다 보니 24살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문제는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택했던 것. 퇴사를 하고, 여러 번의 이직 실패 뒤에도 나는 여전히 인생의 정답은 <회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다양한 일들이 차고 넘치다 못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건, 회사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건, 32살이 된 2020년의 4월이었다. 광대를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며, 나는 결심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을 세상과 (본격적으로!!!!)맞짱 뜰 준비를 시작하기로.
며칠 뒤, 급여가 입금됐다. 132,904원. 신경 치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웬일인지 벌써부터 치아가 튼튼해진 느낌이 들었다. 강철 같은 치아를 득템 한 내 몸에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혈관을 타고 뜨겁게 흐르기 시작했고, 시간은 어느새 5월의 초여름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