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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일 테니까.

by 프니

"어릴 때는 얘가 지이이이인짜 이뻤거든?"


어머님의 한마디에 남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것은 남편의 탄생설화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야기는 바로 이러하다.


1989년 1월 6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 태어난 남자아이가 간호사들의 품에 안겨 엄마를 만났다. 아이를 보여주던 간호사는 "이렇게 눈에 예쁜 아이는 정말 천 명 중 한 명이예요!, 너무 이뻐요!"라는 말을 하게 되고........(많은 이야기 중략) 너무나 곱고, 예쁘게 생긴 탓에 어딜 가든 여자아이로 오해받으며 자란 그. 한 번은 백화점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가려는데 모여든 여성분들이 아이의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당연히 여자 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쁜 남자아이는 처음이에요, 어머니."라고 했다는 믿기지는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어머님이 저녁 내내 강조하시고, 또 자랑하셨던 남편의 눈을 쳐다봤다. '음, 맞아. 눈은 이쁜 편이긴 하지. 나도 처음에 봤을 때 뷰러를 한 건가, 착각했을 정도로 속눈썹이 길고 이쁘니까... 그런데.. 그런데..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1,000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 맞을까?' 생각하며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머릿속에서 '맞아, 맞아' 하는 어머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머님 말이야. 여보가 아직도 잘 생겼다고 믿으시는 것 같아."


"아니, 원래 자식은 다 그런 거지 뭐. 원래 엄마 레퍼토리야. 나는 지금까지 그 얘기를 들은 게 한 1,494번 된 듯?"


순간 오금이 저렸다. 나는 지금까지 고작 2번 들었는데, 앞으로 1,492번이나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웃음을 참느라 뱃가죽이 단단해지고, 입술에는 경련이 올 뻔했다. 앞으로 몇 번의 웃음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것인가. 탄식이 절로 났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로도 어머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신체 중에서 가장 예쁜 눈은 안경으로 가리고, 얼굴에는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33살 아들의 얼굴은, 어머님에게는 여전히 천 명, 만 명, 아니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아들일 테니까. 어머님의 말에는 여전히 100% 동의하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는 100% 공감이 갔다.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일 테니까.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자식이 똥밭에 몸을 뒹굴고 똥내를 풀풀 풍겨도, 부모에게는 말끔한 천사처럼 보일까? 도대체 뭘까. 그날 이후, 아들의 리즈시절을 말씀하시며 반짝반짝 빛나던 어머님의 눈동자가 오래도록 생각났다. 나는 엄마에게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 오금이 쑤셨다.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왜. 시댁 잘 다녀왔어?"

"엉~ 잘 다녀왔지. 엄마는 뭐해."


엄마는 눈으로는 영웅이의 방송을 보면서, 귀로는 영웅이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 엄마에게 임영웅은 무엇인가.)


"아니~오늘도 영웅이 노래 듣네, 안 지겨워?"

"얘는, 지겨울 리가 있니. 매주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데 하나하나 듣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라~~"


"좋네~~ 엄마, 엄마. 근데 나 어릴 때 어땠어. 너무 남자애 같다고 했지?"

"그럼,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나가기만 하면 남자애냐고 물었잖아~하루는 너무 화가 나서, 머리핀을 꽂았는데도 남자애냐고 또 물어가지고 열이 있는 대로 받아서 집에 온 적 있잖니? 호호"


"아니, 그 얘기는 너무 많이 들었고, 또 딴 얘기 없어?"


이쯤에서 '어릴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뻤지.'라는 말을 들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만약 더 나아가, 동화처럼 아름답고,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엄마만이 아는 나의 이야기를 해 주신다면, 저릿한 마음을 붙잡으며 엄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리라.. 고 마음의 준비를 하던 그때, 그때였다.


"넌 정말 웃겼지. 엄마 친구가 고급 아파트로 이사 갔다고 해서, 집들이 갔는데. 네가 거기 거실에서 오줌 싼 거 기억나냐? "


"아니.."

순간 오금이 저렸다. 갑자기 오줌이라니.


엄마, 지금 그런 냄새나는 이야기를 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눈물이 줄줄 나는 감동적인, 엄마의 애정이 가득 담긴 귀엽고 소중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외쳤지만 엄마는 30년도 더 되어 묵을 대로 묵은 냄새나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제발 요기에다가는 싸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딱 그곳에 싸가지고. 내가 치우느라. 아이고~~"

"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를 몇 번이나 외쳤을까. 30년도 더 된 오줌 사태를 전하는 엄마의 음성이 점점 커지더니, 웃음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엄마 그러지 말고 훈훈한 얘기 좀 해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사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딸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테지만, 서로서로 놀리고 타박하는 게 익숙한 모녀 사이에는 쑥스러운 말일 테니까. 엄마의 마음은 그렇고 그런 것일 테니까.라고 굳게 믿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이제 오줌 얘기 좀 그만하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엄마는 하소연인지, 자랑인지 모를 말들을 하느라 오래도록 전화를 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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