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날 위한 소리, 장소리

장어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by 프니

매달 우리 집으로 장어를 배달해주는 엄마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떡진 머리로 나온 사랑스러운 둘째딸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시작했다. 네가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엄마가 편할 텐데. 아니 나이가 몇인데 운전면허를 딸 생각을 안 하니로 시작한 잔소리는 곧 유전자 이론까지 뻗어나가더니, 겁쟁이 아빠처럼 마흔 먹고 딸 생각인 거냐는 말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그만! 그만! 을 외치지도 않는다. 엄마의 잔소리 레퍼토리는 듣지 않고도 줄줄줄 읊을 수도 있고, 이제는 리듬에 맞추어 즐길 수도 있다. 자식 인생 33년인데 그 정도에는 타격을 입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매달 장어를 사 오는 아빠, 그리고 그 장어를 배달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뭐가 들었는지 무거워 건네받은 오른팔이 툭하고 내려갔다. 자두에, 상추에, 마늘종에, 김치까지! 그럼 그럼, 이 정도 음식 지원이라면 잔소리는 들어야지. 아니다, 이건 장어를 받을 때마다 듣는 소리이니까 장소리라고 이름을 지어주기로했다.


엄마는 날이 덥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오키오키, 장어 감사! 를 외치고 배웅을 하려는데, 갑자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야"

"엉?"


"야, 오늘 이거 꼭 써라. 운전 못해서 엄마가 차로 갖다 준 거. 으하하하하"


성의 없이 오키오키를 외쳤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다짐했다. 오, 진짜 써봐야겠는데? 왜 그동안 엄마가 장어를 배달해 줄 때마다, 쓸 생각을 못했을까? 이거 아주 제대로 구워삶으면 맛있는 글이 될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에어프라이어에 종이 포일을 깔고 장어를 옮겨 담았다. 180도, 10분. 10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집에 막 도착했을 엄마를 상상했다. 띵! 어느덧 10분이 흘렀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기름 소리를 내며 맛깔스러운 몸짓을 자랑하는 장어를 그릇에 옮겨 담는데, 갑자기 눈물이 코앞을 가릴 뻔했다.

장어 하나에 자식 생각해서 반찬을 챙겨준 어머니, 장어 하나에 자식 먹인다고 수고스럽게 차를 몰고 와준 어머니, 장어 하나에 어머니. 또 어머니...... 안 되겠다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받지 않았다. 주차 중인가? 싶었는데 때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왜~~ 왜~전화했어."

"아니, (콧물, 눈물 참고) 장어 고맙다고. 다음엔 내가 가지러 갈게. 대중교통을 타는 한이 있어도 말이야."

"아니~운전면허를 따라니까."

"음"

"엄마 지금 주차해놓고 임영웅 노래 듣고 있으니까 끊어."

"아 오키.."

장어를 베어 물었다. 뜨거운 장어의 육즙이 입안에서 울려 퍼졌다. 입을 열면 주르륵 쏟아질 것 같았다. 입에 구멍이 뚫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늘에계신 조물주에게 경외로운 마음까지 들었다.


흐르는 것이 눈물이 아니라 육즙이라 다행이었다. 흐르는 것이 콧물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라 다행이었다. 아빠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임영웅을 여전히 너무너무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오늘같이 기력이 없는 날에는 냉동실에 얼려둔 장어를 꺼낸다. 에어프라이어에 종이 포일을 깔고 장어를 옮겨 닮는다. 장어 하나에 대박, 장어 하나에 맛있겠다, 장어 하나에 개짱!을 외치며. 오늘도 불효자는 장어를 먹는다. 엄마의 사랑을, 아빠의 정성을 꼭꼭 씹어 먹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 날 낳으시고, 상추를 기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