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내게도 엄마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자분 치아는 굉장히 약하네요. 아마 부모님 영향이 크실 거예요. 유전적인 것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선생님은 초록색 천을 두른 채로 힘없이 누워있는 내게 말하셨다. 몇 년 전, 다른 치과에서도 충치가 잘 생기는 치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여전히 내 치아는 참 부지런히 충치를 퍼트리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내 치아의 원인이 엄마일지, 아빠일지 궁금해졌다. 당장 전화를 걸어 엄마 때문에 치과를 못 끊는다며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진상짓은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엄마의 탓은 아니기에.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님 탓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이렇게 치아가 잘 썩는 것도 유전이고, 엄마를 닮아 허리가 길어 설거지를 조금만 해도 허리가 아프고, 아빠를 닮아 튀어나온 광대와 둥근 얼굴이 콤플렉스였고, 내가 30년이 넘도록 겁이 많아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것도 나이 마흔을 훌쩍 넘은 후에야 운전면허를 딴 아빠의 영향일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 탓하기를 조금씩 줄여나갔지만, 가슴 한편에 아주 작은 공간은 남겨두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리라 생각한 철없는 자식 놈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엄마, 아빠와 크고 작게 부딪혔다. 결혼은 나와 남편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부모님의 생각을 배제하고 진행하려 하다 브레이크가 자주 걸려, 높은 언덕을 올라갈 때마다 끙끙댔다.
우리는 예물과 예단을 생략하기로 했다. 근데 어느 날부터 엄마는 그래도 은수저는 해야 하지 않겠니, 이불은 해야 하지 않겠니 라며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고, 냄비세트, 그릇세트, 수저세트, 겨울에 결혼한 우리에게 여름 이불까지 사다 주었다. 엄마에게 이렇게까지 안 챙겨주어도 된다고, 이 정도 물건은 그냥 우리 돈으로 사겠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면서 또다시 하나둘 신발장 앞에는 새로운 혼수 템들이 쌓여갔다. 처음에는 엄마가 힘들까 봐 안 챙겨주길 바랐지만, 엄마는 분명 즐기고 있었다. 결혼을 하는 새색시처럼 엄마의 얼굴은 웃음으로 빛났다.
어릴 때는 엄마의 부지런한 오지랖이 불편했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며 뭐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가끔은 싫기도 했다. 오래 알고 지낸 혼자 사는 이웃에게 명절에는 음식을 갖다 주었고, 치과 치료가 끝날 때는 맛있는 간식세트를 사 갔고,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분들을 위해 장을 봐서 갖다 드렸다. 그날도 양손 무겁게 장을 보고 온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켰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 해~! 엄마도 힘들잖아."
엄마처럼 그렇게 하기 힘든데, 엄마 진짜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던 나였는데 입은 다른 말을 출력했다. 엄마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아서 하는 거야, 마음은 힘들지 않아."
그날부터 나는 엄마의 부지런한 오지랖을 전적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에야 나는 엄마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 평생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데도 힘에 부쳐하던 내가, 남편의 동태를 살피고 부지런히 챙기기 시작했다. 작지만 분명 큰 변화다. 가만히 쉬는 것보다, 남을 생각하고 도움을 주는게 행복하다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건 긴 허리, 약한 치아,옆으로 쭉 찢어진 눈이 다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