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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의 행복을 느끼는 신혼생활

남편과 결혼하고 가장 좋은 점, 190가지 중 하나.

by 프니

몇 번이고 재방송해주는 재미없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우리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재미없는 티브이를 보지 않는다고 마땅히 할 것도 없었으니. 더 이상 이대로 주말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우리는 도시락을 들고 근처에 있는 서울랜드에 가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코끼리열차를 타고 서울랜드 정류장에 내려 정문 앞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싶어서였다. 뜬금없는 제안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청바지를 챙겨 입고 따라나선 남편의 손을 잡고 도착한 서울랜드.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해는 슬슬 도망을 치고 있었다.



씻은 지 얼마 안 된 상추 위에 여전히 열기가 가득한 제육볶음을 올려 쌈을 한입, 물을 한입 먹고 마셨다. 크으. 집에서도 자주 해 먹는 음식인데 참 신기하게 도시락통에 담아 먹으면 또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아, 은박지 돗자리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서울랜드기념영상


연애시절 한 달에 한 번은 꼭 놀러 왔던 곳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릴 적에도 참 많이 왔었는데 엄마는 아빠와 다툰 날이면 나와 동생을 데리고 서울랜드에 왔었다. 야밤에 서울랜드에 가자는 엄마 말에 솜사탕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신이 나기만 했던 눈치 없던 어린 시절의 내가 어느새 장성한 어른이 되어 엄마손 대신 남편의 손을 잡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니.. 지는 노을 때문인지, 쌈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괜히 가슴이 꿀렁꿀렁 기분이 묘한 순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장 좋은 점이 무어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말한다.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것! 아무 때나(밤 12시에) 아무 이유 없이 집 밖을 나가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먹고 아무 목적 없이 동네를 걸으며 수다를 떨다가 아무 시간에 잠을 자도 좋은 아무 자유 상태! 물론, 혼자여도 가능하지만, 둘이어서 더 재미있고 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자인 내게는 야밤에 편의점에 가는 것 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남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들도 내게는 아무거가 아닌 것들이 참 많음을 새로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1,500원 코끼리열차를 타고 다시 서울랜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집에 가기 전에 빵집에 들러 서로가 좋아하는 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이야기 대잔치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참 좋은 날이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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