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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Sep 23. 2021

인스타그램 밖에서 만난 사람들

그래, 뭐든지 대체제가 있는 법이지.

인스타그램의 뜻을 며칠 전에 알았다. 인스타그램은 인스턴트 카메라와 텔레그렘을 합쳐 만든 것으로, 사진을 손쉽게 다른 사람에게 전송한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지금 무얼 하는지, 사람들의 일상을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이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내게는 이 랜선 세상이 영 불편하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매일 아침, 눈곱도 제대로 떼지도 않은 상태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짓은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것인데, 얼마나 자주 했는지 눈감고도 한방에 열 수 있는 그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비공계 계정으로 지인들이 간밤에 올린 소식을 보고, 공개 계정으로 달려가 인스타 셀럽이 새벽 동안 올려놓은 스토리를 하나씩 읽고,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서점, 좋아하는 연예인의 피드를 구경하다가 인스타그램이 추천해주는 피드를 보다 보면 아니 벌써 열두 시... 어떡해 벌써 열두 시네 노래가 현실이 되는 통탄스러운 현실의 반복.


나는 왜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침대에 누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요즘 힙한 인스타 그래머들의 일상과 영감을 간접 체험할 수 있고, 각종 이벤트에 참여해서 커피값을 벌 수도 있고, 우연히 보게 된 영상으로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수도 있고,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친구들의 일상을 볼 수 있으니, 방구석 집순이에게 얼마나 근사한 공간인가.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인스타그램은 내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지만, 나를 점점 작게 만들었다. 빠르게 급변하는 콘텐츠와, 유행 속에서 그와 정반대의 시간을 보내는 내가 초조해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방구석 찐따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미 높은 레벨에 올라간 그들이, 나의 경쟁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미움, 다툼, 시기, 질투의 감정이 들고 만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글도 잘 써? 사진도 이쁘게 잘 찍고, 아니 협찬도 받는 단 말이야??? 부럽다 부러워. 그 사람이 했던 지금까지의 노력은 생각도 못한 채, 결괏값만 보고 부러워 발을 동동 구르는 찌질함, 그러니까 이것은 열등감이었다.


인스타 피드 속의 사람들은 가장 행복한 얼굴로 슝~하고 나를 지나가는 느낌. 그때 알았다. 나 같은 사람은 SNS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명약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Gabrielle Henderson /unplash

그 시절, 나의 핸드폰 사용시간은 평균 13시간을 웃돌았으며, 그중 인스타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 무시했다. 평소 8시간 이상 자고, 하루가 24시간이니까.. 8시간을 빼보면.. 보자 보자.. 깨어있는 시간에는 온종일 핸드폰을 한다는 개떡 같은 상황이라고? 믿을 수 없지만 현실이었다. 나는 그 길로 모임에 등록했다.


8월 한 달 동안 스마트폰 타임을 기록하는 모임이었다. 스마트폰 중독을 고치기 위해 한 달에 모임비 만원이라면 아깝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아까웠다. 그래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간을 성실히 기록했다. 덕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도 현저히 줄었다. 평균 시간 4시간. 하하. 역시 내가 한다면 한다니까? 하지만, 짜릿한 승리의 기쁨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보기 좋게 무너졌으니..


모임이 끝난 다음날 9월 1일, 나는 스마트폰을 핸들 삼아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았던 욕구들을 이리저리 분출하느라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루에 25분 정도만 들어갔던 인스타그램의 사용시간은 한 시간, 두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세 시간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안 되겠다. 이건 정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눈에 보이면 계속 보고 싶고, 귀에 들리면 계속 듣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니까, 급발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의지가 없지, 마음이 없냐! (그게 그 소리) 인스타그램을 꾸우욱 눌러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인스타그램이 자리 잡던 공간에는 배달어플 아이콘이 슝 하고 올라와 자리를 메꾸었다.


그래, 뭐든지 대체제가 있는 법이지.


마땅히 할게 없어진 나는 슬리퍼를 끌고, 현관을 나섰다. 낮 2시의 공원은 생각보다 긴장감이 넘치다 못해 줄줄 흘렀다. 탁! 탁! 게이트볼을 치는 어르신들, 산책을 나와 신난 강아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뭇잎을 쓸어 담는 경비아저씨를 만났고, 운이 좋으면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만나 신상 요구르트를 먹기도 했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던 머리카락이 입술에 닿았을 때, 게이트볼 경기가 끝내주게 재미있을 때, 야외석 1열에서 겁나 빠른 개미를 직관할 때, 벤치에 앉아 책을 3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이제 보지 못할 꽃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툭 하고 떨어질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 아이가 수줍게 인사를 해주었을 때, 나는 마음속에서 좋아요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며 빠르게 행복해졌다.


창문을 꾹 닫고, 인스타그램을 켰던 지난날을 뒤로한 채, 오늘도 문을 열고, 공원으로 나간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만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진짜 세상의 이야기를 보고, 듣기 위해.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작은 피드 에 있는 이름 모를 타인 대신, 크기 제한이 없는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며, 생각하고, 말하며 웃는 나를 충분하게 느낄  있는 시간. 그게 진짜 사람이 있고, 내가 있는 곳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벤치에 앉아 좋아요를 누른다. 게이트볼 구경 좋아요! 독서 좋아요! 호떡 트럭 좋아요! 바람 좋아요!!!!!! 인스타그램을 삭제했지만, 좋아요는 넘쳐나는 요즘이 좋아 죽겠다, 증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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