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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ug 13. 2021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중경삼림, 몽중인.

그를 보는 내내 손이 덜덜 떨렸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제멋대로 이불보를 바꾸질 않나, 통조림을 바꿔치기하지 않나, 물에 수면제를 타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놓고 행복해하며 춤을 추는 저 미친 여자를 보면서 나는 초조해진 것이다. 들켜, 저러다 들키지. 이제 그만하고 빨리 집에가라고!! 하지만 그는 애타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씽긋 웃더니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과감한 짓을 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주거침입죄에 괘씸좨까지 가중 처벌될 법한 일들을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말릴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저 미친 여자는 영화 스크린 안에 들어있었으니까.


중경삼림, 우리가  영화였다. 전염병이 장기화되면서    있는 것들을 많이 잃게  우리는   없는 것들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날도 그랬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에서 나왔지만,  시가 넘은 시각에 우리를 받아  식당, 카페는  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어쩔  없는 선택이었다. 중경삼림? 중국의  이야기인가? 짧디 짧은 지식과 무식함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에   있는 티켓을 끊었을 뿐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를 만나고  것이다. 이것도 어쩔  없는 우연이었다.


영화는 중국의 숲은 개뿔, 홍콩의 대표 감독, 왕가위의 대표작인 영화로 20대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였다. 한번 집에 놀러 오라는 남주인공, 양조위의 말을 듣자마자 왕페이는 진짜 그 집에 갔다. 하지만 문제는 몰래 들어갔다는 것.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동방예의지국의 젊은이로서 두 눈 뜨고 보기 어렵고, 믿을 수 없는 짓이었다. 그 이후 반복되는 그의 대책 없는 행동 내내 흘러나왔던 노래는, 마지막 스크린이 올라갈 때 다시 한번 크게 울려 퍼졌다.


전주부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노래에 가슴까지 떨렸다. 그때 가슴속에서부터 달아오른 뜨거움이 온몸을 덮쳤다. 덕분에 우리는 스크린에 흰 점이 없어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다가 결국 짠맛을 보고 말았다. 눈물 한 방울이 광대를 타고 주르륵 내려온 것이다. 고개를 돌리니 남편 꼴도 말이 아니었다. 멍한 얼굴로 영화관을 빠져나와 드라이브를 했다. 목적지도, 목적도 없는 야밤의 드라이브.


재생 > 중경삼림 ost, 몽중인


몽중인 노래를 연속으로 들으며 도로 위를 쌩쌩 달렸다. 어느덧 새벽이었다. 보통의 날이라면 발을 뻗고 침대에 누워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날 우리에게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아니, 고장 난 걸지도.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고요한 새벽의 한강을 달리며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대의 통제 없는 자유, 해방감, 앞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무모한 용기를 가장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그때의 우리를 떠올리며, 20대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선뜻 용기 내기 힘든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그 노래가 갑자기 그렇게 쳐들어 와, 고이 접어두었던 자유와 해방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갑자기 나에게 쳐들어 와, 이 무료한 내 꿈의 세계로 쳐들어 와. 이토록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지... -몽중인 노래 중->


다시 생각해보니, 그의 미친 짓은 무모하지만 분명 용기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가장 젊은 날에 생긴 사랑의 감정을 마구마구 분출해내고 행복해하는 사람.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와 함께 살기로 했다. 단출한 두식구였던 우리 집에 그의 대책 없이 열렬한 마음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잠에 일어나서 바로 노래를 재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몽중인과 함께라면 춤을 추며 청소기를 돌리게 되고,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콧노래를 흘러나오게 한다. 찾았다. 자주 무기력함에 빠지는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주는 노래. 반갑다. 별거 아닌 일상도 특별하게, 순간의 자유와 행복을 맘껏 느끼게 만들어주는 노래가.


"나 지금 일 해야 되는데 너무 하기 싫어!!"

"그래? 그럼 지금 당장 몽중인을 들으세요! "

남편은 내가 시든 콩나물이 될 때마다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처방을 내린다.


몽중인은 할 수 없는 것들이 창궐한 세상에서, 해내야 하는 것을 즐기고, 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맞다. 이 노래와 함께라면 원하는 곳에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힘이 생긴다. 나는 더 이상 중경삼림을 보면서 손을 덜덜 떨고, 입술을 깨물지 않는다. 그와 함께 몽중인을 부르며 짜릿한 해방감을 마음껏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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