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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ug 06. 2021

복숭아는 떨어뜨려봐도 괜찮아.

그깟 일, 지나가는 그런 일. 별일 아닌 일.

동생이 사라졌다. 삼촌의 과수원 밭에서. 엄마와 함께 차 트렁크에 복숭아 박스를 차곡차곡 싣고 있는데 가장 힘을 써야 할 동생이 사라진 것이다. 아오, 또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땀이 뻘뻘 흘렀다. 줄줄 흐르는 땀에 분노가 터졌다. 너 내가 잡고 만다. 기다려라, 나의 여섯 살 어린 동생 놈아. 동생을 발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생은 하우스에서 고작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과수원의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야, 거기서 뭐해? 장난하냐? 빨리 와서 옮겨."

동생은 뒤를 돌아 엉거주춤 엉덩이를 내빼기나 할 뿐,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터벅터벅. 빠른 걸음으로 동생 앞으로 걸어갔다.

"야, 뭐 하는 거야."

"아니 어떡하니, 내가 지금 복숭아 하나를 떨어트렸는데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동생의 발밑에는 노란 종이에 감싸진 복숭아가 ! 하니 떨어져 있었다. 동생은 떨어진 복숭아 앞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니, 이거 내가 정말 한번 만졌는데 갑자기 떨어졌어. 어떡하지?" 그깟 복숭아 하나에 사색이 되어버린 동생이 웃겼지만, 5분 전 삼촌에게 복숭아 농사의 수고와 번거로움에 대해 익히 들은 탓인지, 동생이 떨어트린 것이 고작 복숭아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나는 실언을 했다.


 "야, 너 어쩔 어쩔, 증거를 인멸해. 안 보이는 대로 던져버려"라고.. 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딱히 마땅한 해결책을 줄 수 없어 어물쩡 거리다 동생을 끌고 들어와, 남은 복숭아 박스를 옮겼다. 박스를 옮기는 내내 바닥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는 복숭아가 신경 쓰였다. 동생은 곧 엄마에게 본인이 복숭아 하나를 떨어트렸다고 이실직고를 했다.


기죽은 동생의 말을 듣던 엄마가 말했다.

"야, 그 정도 가지고 뭐 그래. 바람에도 떨어질 수 있는 거야."

그제야 나도 말을 덧붙였다.

"맞아, 바람에도 떨어질 수 있지!"


"그깟 일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 살면 이런 일 저런 일 생기는 거지. 뭘 걱정하고 그래."

"맞아! 맞아!"


엄마는 "그깟 일"이라는 쉬운 말로 동생을 위로했다. 많이 익어서 떨어질 수도 있고, 바람이 불어서 떨어질 수도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며 쿨한 위로를 던지는 엄마가 멋있었다. 상대방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것만이 완벽한 위로가 아님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복숭아를 떨어트려봤을까 생각해봤다. 모르긴 몰라도 떨어트려본 것은 복숭아뿐이 아닐 것이다. 엄청 큰 수박부터 작은 방울토마토까지,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직접 경험하고 이겨내 봤기에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큰일도 작은 일도 고작 그런 일이라고 넘길 수 있는 단단함을 나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걱정이라는 단어에 "그깟 일"이라는 딱지를 붙여보면, 정말 별 일 아닌 일처럼 여겨지는 신기한 경험을 나는 했다.


앞으로 나는 "그깟 일"의 홍보대사가 겸 걱정 퇴치 단장이 되어 볼 생각이다. 팀장에게 욕을 진탕 먹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 그깟 일, 저도 당해봤었죠. 괜찮아요. 회사 나가면 모르는 아저씨일 뿐!.", 누군가 시험에 떨어질 것 같아서 걱정이라 한다면, "아 시험이 그깟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은 여러 가지 있더라고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복숭아를 깎았다. 비닐봉지 안에서 이리저리 굴렀는지 여기저기 멍든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 보기와 다르게 맛이 좋았다. "그깟 일"이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앉은자리에서 복숭아 두 개를 빠르게 삼켰다. 복숭아의 단맛이 입안에서 사라지기 전에 동생에게 카톡을 남겨봐야겠다. 네덕에 오늘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가슴은 뜨겁게 어차피 복잡한 세상 쿨하게 살자고. 네가 떨어트린 복숭아는 괜찮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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