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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ul 17. 2021

울음이 많아지는 계절, 여름

모기도 울고, 모기에 물린 나도 울고, 매미도 우는

온다, 온다. 울음이 온다. 거하게 울음이 많아지는 계절이 와버렸다. 이름도 찬란하게 더운 여름. 여름이 되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곳은 발바닥. 끈적끈적한 땀으로 뒤범벅칠 된 발바닥이 샌들에 닿을 때 나는 소리는 책도 아니고 백도 아닌 그런 불쾌한 소리를 난다. 아무래도 발이 우는 것 같은 찝찝함이다.


발이 울기 시작했다면 그곳도 가만있을 리가 없다. 바로 겨. 아무리 시원한 쿨링 반팔티를 입어도 흥건하게 적셔지는 겨드랑이는 여름만 되면 고장 난 수도꼭지가 돼버리고 만다. 손, 허벅지, 콧잔등, 인중, 앞머리, 여름은 사람을 울게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다.           


사람은 원체 울보인 것을 여름은 모르는 걸까. 으아으아아앙, 크으아아앙 쩌렁쩌렁 울음으로 세상에 데뷔를 알렸던 신생아 때를 시작으로,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거대한 울보몬으로 진화했다.


그저 아이가 귀여워 박수를 치며 웃는 어른들의 얼굴이 무서워서, 밀린 학습지를 풀기 싫어서, 엄마가 치킨을 시켜주지 않아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대학에 떨어져서, 아빠의 작아진 어깨를 보다가, 취업이 되질 않아서, 상사가 너무 힘들게 해서, 퇴사를 할 수 없어서, 엄마가 슬퍼 보여서. 답답하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살았다. 그러니까, 안 그래도 세상살이 울고 싶은 날이 많은데, 여름도 나서서 나를 울리고 있는 믿기지 않는 현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여름이 좋다. 반갑기까지 하다. 끈적끈적한 손바닥으로 핸드폰을 만지며, 시간 내에 오지 않는 버스를 땡볕에 기다리다 투덜투덜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와도 여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여기저기 울음의 흔적이 가득한 찝찝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샤워기를 튼다. 샤아 아아. 강력한 물줄기를 따라 끈적끈적하게 붙어있는 더위의 흔적들을 지운다. 샤워를 하고 문을 연다. 매트 위에 몸을 올려 몸의 여기저기 달린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제로콜라를 하나 꺼내 선풍기 앞에 누워버리면 끝.      



"아, 행복하다 “     


땡볕에 몸과 마음이 시들고 말라버렸지만, 또다시 물을 주면 쑥쑥 자라나는 식물들처럼 다시 회복해 버리면 그만인 계절. 여름이 가면, 선선한 바람의 계절이 오고, 강추위를 동반한 눈의 계절이 오는 것을 아니까. 매일이 울음이 나오는 시간이라도, 곧 뽀송뽀송해진 마음을 갖게 될 때가 온다는 것을 아니까, 여름을 마음 놓고 즐기고 싶다.


수박주스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수박이 질리면 멜론을 먹을 수 있어서, 살얼음이 가득한 냉면 위에 겨자소스를 맘껏 뿌려 먹을 수 있어서, 길을 걷는 내내 어디서든 꽃을 볼 수 있어서, 잔디밭 위에 맘껏 돗자리를 펼칠 수 있어서, 무거운 패딩 대신 가벼운 옷을 몸에 걸칠 수 있어서 행복할 수밖에 없는 여름.


모기도 울고, 모기에 물린 나도 울고, 매미도 우는, 모두 다 우는 계절.


왔다, 왔어. 이제 마음껏 울 수 있는 여름이 왔다.



이글의 추천곡:슈가볼-여름밤 탓


https://youtu.be/pvf4PWKOG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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