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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Oct 07. 2021

황도가 빨개지면 알게 되는 일

왼손이 할 수 없는 일은 오른손이 하면 되니까.

출출한 오후, 집어 들었던 마스크를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비닐도 뜯지 않은 샤인 머스켓, 내 얼굴보다 큰 배, 복숭아들이 뒤엉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려면 과자보다는 과일을 먹자. 이로써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과자값 4,800원을 절약한 셈!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한 손으로는 복숭아를 집어 들고 칼을 찾기 시작했다.


과도는 어젯밤 고구마를 자른 탓에 설거지를 해야 했다. 아, 귀찮아. 그러니까 진작에 설거지를 했어야지.라고 생각하며 고기를 썰 때나 꺼내는 큰 칼을 들고 복숭아의 껍질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만, 결혼 3년이면 능숙한 칼질을 갖게 되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또 한 번 감탄을 한 게 문제였을까? 껍질을 반도 깎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 노랗게 탐스러운 황도의 속살에 웬 빨간 액체가 뚝 하니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unplahs@charlesdeluvio

아뿔싸. 그 빨간 액체는 다름 아닌 나의 피였다. 칼에 손을 베인 것이다. 복숭아 맛을 보기 도전에 피맛을 본 어이없는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으악.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냅다 뛰다가 일단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었다. 따끔했다. 귀찮아도 과도를 닦아서 자를 걸 이라는 후회 하나, 그냥 껍질채 먹을 것이라는 후회 하나, 그리고 또 하나의 큰 후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칼에 손이 베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무지함이었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sos를 쳤다.

일단 지혈을 하고 나니, 다음이 막막했다. 이제 연고를 바르면 되는 건가? 답이 없는 남편을 뒤로하고 검색창에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


"칼에 손 베었을 때"

"칼에 손 베었을 때 어떻게"

"칼에 손 베었을 때 지혈 후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친절한 인터넷 친구들이 연고를 바르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 연고는 무슨 연고를 말하는 거지? 뭐지? 너무 당연해서 뭐를 바르라고 얘기 안 해주는 건가? 괴로워하던 그때! 그제야 후시딘이 생각났다. 맞다. 후시딘! 어릴 적부터 늘 같은 자리에 놓여있던 바로 그 후시딘. 당장 창고로 달려가 약통을 열어 후시딘을 찾았다. 화상, 외상, 봉합 창 등에 의한 2차 감염에 효과가 있다고 또박또박 쓰여있는 그 후시딘을.


바닥에 앉아 천천히 작은 뚜껑을 돌렸다. 상처 난 곳에 연고를 고르게 펴 바르고 오른손으로 꾸역꾸역 거즈를 잘라 그 위에 올려두고 여전히 답 없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후시딘 바름"


그날 밤, 퇴근을 한 남편에게 다짜고짜 정수리를 들이밀었다. 이틀이나 감지 않은 정수리 공격에 잠시 당황한 남편은 곧 샴푸를 손에 묻혀 내 머리를 박박 긁고, 이리저리 비비기 시작했다. 찝찝함과 답답함이 한 번에 사라지고, 맑고 상쾌한 정원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 정수리를 맡기고 눈을 감으니 마지막으로 엄마가 내 머리를 감겨주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엄마만큼의 섬세한 손길은 아니지만, 시원하게 머리를 감겨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래, 이게 부부지.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서로 도와주는 거, 그게 부부지! 크으으으! 하루 종일 몇 번의 감탄과 감격을 했는지 모르겠는 그때.


그때였다. 마음속에서 이제 그만 좀 이성을 찾으라고 누군가가 내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은 나는 심문을 하듯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퇴근하자마자 머리를 감겨준 남편이 아닌, 나 바로 자신에게.



Q. 상처를 치료하지 못할 상황이었나?

A. 아니오


Q.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을 원했는가?

A. 예


Q. 습관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인가?

A. 예.



운명공동체인 남편에게 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조언을 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허구한 날, 스스로 해결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남편을 찾아대는 내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복도 배수관에 붙은 보온재를 떼야하는 간단한 일에도 나는 남편을 찾았고, 아파트 동대표 선거날에도 남편을 보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귀찮은 일이나, 내가 나서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남편을 불러 세웠다.


서로가 잘하는 부분을 도맡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로 한 우리 부부의 약속은 조금씩 남편에게 기울어지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니, 이것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만 한정되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가족, 직장,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비슷한 모습이었다.


귀찮은 ,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내가 먼저 나서보는 것이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나는 못해.   없어.라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으니까. 죽을 때까지 못할  같은 일도, 어찌할  없는 상황이 되면 눈에 불을 켜고서라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러니까 왼손이   없는 일은, 오른손이 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소리를  길게도 했다.


이제 일어나서 아주 맛깔스러운 점심을 먹어야겠다. 오늘은 두부가 송송 들어간 맛있는 청국장을 끓여야지. 아, 일단 손바닥 위에서 덜렁덜렁 춤추고 있는 대일밴드를 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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